리더십 동화 "앉지 못하는 의자"

2021-02-24     임정진 동화작가

“영선이가 한국에 와서 전시회를 한다는 게 정말입니까. 오라버니.”
“나도 신문서 봤다. 할 말 없으면 그만 끊자.” 
심목수는 퉁명스럽게 전화를 내려놓았다. 심목수는 접었던 신문을 펼치고 돋보기를 다시 썼다. 손바닥만한 사진은 딸이 만든 의자를 보여주고 있었다. 색동옷감으로 만든 의자는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허공에 매달리는 의자를 뭐 하러 만든단 말인가. 쓸모 있고 맵시 있는 반닫이며 의걸이 장을 만들다 힘에 부쳐 십년 전부터 소목일을 그만 둔 심목수였다. 앉지 못하는 의자를 만들었다는 딸을 아무래도 용서하기 힘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용서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걸 알기에 마음을 다 잡고 다시 신문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열 서너 번이나 읽은 제목이었다.
<재독 섬유 조각가 심영선 개인전. 앉지 못하는 의자. 쉬지 못하는 고단한 현대인들의 영혼을 상징하는 심영선의 작품들은.....>
심목수는 천천히 다시 그 기사를 읽었다. 그러나 거기까지 읽으면 눈물이 고여 더 아랫줄을 읽을 수가 없었다. 30년만인가. 아니 정확히 34년만이다. 드디어 딸이 돌아온 것이다. 딸이 울음을 삼키면서 한복 한 벌과 태극기 한 장을 가방 맨 아래에 깔고 독한사전, 한독사전을 챙겨 넣던 그 밤이 눈앞에 아직도 선명했다.
한국서 받는 월급보다 세배는 더 받는다면서 23살의 영선이는 아픈 어머니를 남기고 독일로 떠났다. 심목수는 딸에게 떠나는 날 아침까지도 가지 말라고 했다. 
“낯설고 물 설고 말도 안 통하는 데서 어찌 일을 하며 산단 말이냐. 네가 옆에 있는 게 엄마한테는 보약이야. 가지 마라.”
“엄마 병은 돈이 있어야 고칩니다. 아버지. 걱정마세요. 친구들도 같이 가는걸요.”
그렇게 떠난 게 벌써 34년 전이었다. 

바로 내일, 그 딸이 개인전을 연다는 것이었다. 간호사로 간 딸이 어찌 화가로 돌아왔는지 심목수는 알지 못했다. 독일서 딸이 간호사로 일하며 보내준 돈으로 심목수는 아픈 아내의 병원비며 약값이며 수술비를 충당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나고 나서는 딸이 보내주는 병원비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그러나 딸은 그 후에도 영 돌아오지 않았다. 
‘에미가 죽었다는데도 오지 않던 독한 년. 이번엔 사람 앉지도 못하는 의자를 만들어 목수 애비 얼굴에 먹칠을 하는구나.‘ 
엄마가 돌아 가셨다는데도 오지 않던 딸은 그 이듬해에 휠체어를 탄 독일남자 사진을 하나 보내더니 그와 결혼한다고 했다. 건장한 한국의 청년과 혼인하는 딸을 상상하며 딸의 장롱을 만들 요량으로 좋은 판재를 보관하던 심목수는 너무 실망했다. 그 후 심목수는 딸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여러 번 이사도 했다. 
 
‘아무리 예술이라도 그렇지. 헝겊으로 의자를 만들어? 의자가 뭔데. 사람이 앉을 수 있어야 의자지.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예술을 해.’
심목수는 창고로 들어가 오래된 판재를 쓰다듬었다. 하도 만져서 길이 든 판재는 어린 딸의 뺨처럼 맨들맨들하였다.

밤 늦게 다시 여동생이 전화를 걸어왔다. 
“가 보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하나 밖에 없는 딸인데. 난 다리가 아파서 통 걷지를 못해서 서울까지는 도저히 못 가겠수. 오라버니 내 말 듣고 있수?”
“지가 날 찾아와야지.”
“영선이가 오빠 연락처를 어찌 알아요. 제발 가보세요.”
“다리도 성치 않은 독일 남자랑 지 맘대로 혼인하다니. 애비 없는 딸로 살겠다고 제 스스로 결정한 거지. 난 딸 없다.”
“30년도 더 지난 일이유. 오라버니. 고집 피우지 말고 가서 얼굴이라도 한번 봐요. 신문에 왜 영선이 사진은 안 나오누. 사진이라도 보면 좋겠는데.”
“늦었다. 나 그만 잘란다. 끊자.”
3일을 망설이고서 심목수는 목요일 오후가 되서야 집을 나섰다.
전시장은 생각보다는 넓지는 않았다. 심목수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전시장에 들어가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에 끼어 조심스럽게 천장에 매달린 의자를 보았다. 전시회의 주인공인 딸은 아마도 저 안쪽 어디선가에서 화려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것이다. 
의자의 뼈대는 가는 철사로 만든 듯했다. 헝겊으로 의자의 다리며 등받이를 만들어서는 속에 솜을 조금 넣은 듯 했다. 의자에 사람이 앉기는커녕 의자 혼자서 서 있지도 못하는 엉터리 의자였다. 서 있지 못하는 의자니 천장에 매달어 둔 것이었다. 
색동저고리를 입은 듯한 의자, 천사의 날개가 달린 의자, 고슴도치같은 가시투성이의 의자. 주사기 모양의 다리가 달린 의자, 갈비뼈 모양의 등받이가 있는 의자, 등받이가 앞쪽으로 몹시 휘어져 도저히 엉덩이를 걸칠 수도 없는 의자, 온통 엉터리 의자들이었다. 애시당초 헝겊으로 의자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그것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영 못마땅한 얼굴로 서둘러 출구로 나가려는데 한 외국인 남자가 심목수 곁으로 다가오더니 비교적 정확한 한국어로 물었다. 
“의자가 맘에 드십니까?”
“난 맘에 들지 않소이다. 앉지도 못하는 의자를 뭐 하러 만든 것인지 알 수가 없구려.”
심목수는 혹시라도 자기 목소리를 누가 들을까 싶어 나즉하게 말하고 출구라고 쓰인 문을 열었다. 그 외국인 남자는 웃으면서 심목수를 따라 나왔다. 
심목수는 그 외국인 남자가 한국말을 잘 하는 게 신기하여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눈이 선하게 생긴 이였다. 
“한국말을 잘 하는구만. 배우기 어려울텐데.”
“진짜로 어렵지요. 30년이나 배운 겁니다. 집사람이 한국 사람이거든요.” 
“어허.... 거참. 말도 안 통하는 사람끼리 어찌 살았누.”
“안 통하기는요. 말이야 서로 배우면 되지요. 마음은 잘 통하니까 별 문제 없습니다. 한국말하는 사람끼리도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일도 있잖아요.“
“그야 그렇지.”
“어디까지 가십니까?“
“나야 신설동까지 가지. 우리 집이 거기니까.”
“아 저도 그 쪽으로 갑니다. 저에게 길을 가르쳐 주실 분을 만났네요. 전 알렉스입니다.”
“난 심가일세. 이거야 원.”
심목수는 어리둥절했다. 외국인과 통성명을 하고 동행을 하다니... 그렇다고 뿌리치고 혼자 가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둘은 나란히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야 했다. 

 

전시장 출구에는 휠체어를 탄 여인 하나가 그 둘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전시회의 주인공인 심영선이었다. 뒤따라 나온 기자가 계속 인터뷰를 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작품 얘기는 이 정도면 됐고요. 독일에서의 간호사 생활은 어떠셨나요?”
“일도 힘들었지만 문화적 차이가 심해서 적응이 힘들었어요. 에스컬레이터나 양변기도 다 생소했으니까요. 언어소통이 잘 안되니까 청소나 환자 목욕 등 단순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만 시켰지요. 간호사 자격이 있어도 간호보조사 일을 시키고 대우도 그렇게 해줬어요. 재계약을 할 때면 독일 병원서 일한 경력도 인정을 안 해 줘서 다시 초임 간호사 월급을 받아야 했고.”
기자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물었다. 
“한국에 가족이 계신가요?”
“네...아버지가 계시죠.”
“자랑스러워하시겠네요.”
“그러길 바랍니다. 전 아버지께 불효를 했거든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바로 일주일 전에 전 교통사고로 몹시 다쳤어요. 그래서 다리도 못 쓰게 되었고 그 말을 차마 아버지께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식이 아픈 건 부모님께 불효하는 거지요.” 
“다리를 다치신 후부터 미술공부를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남편께서 권하신 거라면서요?”
“네. 나에게 휠체어 타는 법을 가르쳐준 물리치료사 알렉스가 나에게 미술공부를 권했어요. 내가 종이로 꽃을 접는걸 보고 말이죠. 그는 내게 새 전동 휠체어를 선물하면서 청혼도 했지요. 남편은 나에게 새 삶을 두 번 열어준 사람입니다. ”
심영선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알렉스가 제발 늙으신 아버지를 잘 설득하여 딸과 아버지가 마주서게 해주기를 기도했다. 

알렉스는 노인의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으면서 물었다. 
“전시회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나야 목수니까.... 의자를 전시한다고 해 와봤지. 말짱 엉터리 의자더구만.”
“으하하. 그렇네요. 다 엉터리 의자네요.”
알렉스는 해맑게 웃었다. 
“전 독일사람인데요. 작가가 독일서 간호사로 일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와 봤습니다. 오래 전에 한국에서 온 간호사와 광부가 독일에 많았습니다. 저도 많이 봤습니다.”
“어려운 시절이었지. 그때 한국은 참 살기 어려웠어.”
“한국 간호사들이 그때 독일 와서 고생 많이 했거든요.” 
“집 떠나면 다 고생이지.” 
“쌀밥이라고 준 게 우유를 넣어서 찐 다음 설탕하고 계피가루를 넣은 거였답니다.”
심목수는 목이 막혔다. 가뜩이나 입이 짧은 딸이 그런 것을 먹었을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아득했다. 오이지를 좋아하던 딸이였는데. 
“자세히도 아는구만.” 
“아 아까 팜플렛에 작가가 쓴 얘기를 읽었거든요. 말도 모르지. 음식도 입에 안 맞지. 힘든 일은 다 시키지. 아주 힘들었답니다. 그래서 늘 의자를 보면 앉고 싶었는데 너무 바빠서 앉을 틈이 없었답니다.”
“그러기도 했겠지... ”
심목수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습니다. 
알렉스는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 작가는요. 간호사를 그만두고 미술공부를 하면서 힘들 때마다 앉지 못하던 의자를 기억했답니다. 그래서 그런 작품들이 나온 거지요. 독일서는 저 의자들이 인기가 좋습니다. 아주 비싸게 팔리지요.”
“독일 사람들은 별난 사람들이구만.” 
“작가는 만나보셨어요?”
“아니 내가 왜 만나겠소. 그런 높은 양반을.”
“높기는요. 세상 어느 자식이 아버지보다 높습니까.”
심목수는 제 자리에 섰다. 
“댁은 누구슈.”
“사위입니다. 심영선의 남편입니다. 아버님.”
심목수는 다시 전시장 쪽을 바라보았다. 휄체어를 탄 여인이 하나 있는 게 희미하게 보였다. 자꾸만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간신히 추스렸다. 그리고 심목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사진은... 그 휠체어는....”
“아버님. 그 전동 휠체어는 제가 영선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기념으로 찍었지요.”
“왜 말을 안 했을까. 다리 다친걸... 난 영선이가 다친 줄은 몰랐는데.”
“다리 다친 사위라도 받아들이신 마음이 되시면 영선이가 다친걸 말할 수 있겠다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아버님께서 다리 다친 사위를 싫다하시면 다리 다친 딸도 견디기 힘드실거라고.” 

심목수는 알렉스를 뿌리치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고 다시 신문을 펼쳐서 딸의 기사를 작은 글씨까지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전시회의 수익금을 한국의 가구공장서 일하다 다친 외국인근로자들의 치료비로 기부하기로 했다는 것으로 기사는 마무리되었다. 심목수는 한숨을 여러 번 쉬었다. 이제 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30년 넘는 세월을 제대로 된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산 딸을 그 동안 미워만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심목수는 오랫동안 기름칠만 해두었던 연장들을 꺼내 손보았다. 창고에서 오래된 판재를 꺼냈다. 

이틀 후 아침, 심목수는 작은 트럭을 불러 의자 두 개를 실었다. 그리고는 전시장으로 달려갔다. 전시회 마지막 날이었다. 아직 전시장 문은 열리지 않았다. 
전시장 입구와 출구에 심목수가 만든 단단하고 소박한 의자가 하나씩 놓여졌다. 
그때 마침 차에서 내리던 딸과 알렉스가 그걸 보았다. 
“아버지--”
딸은 휠체어에 앉은 채 울면서 아버지를 불렀다. 
“의자는 이렇게 만드는거다. 사람이 편하게 앉을 수 있어야지. 딸이랑 사위에게 편하게 앉을 의자 하나쯤은 만들어줄 기운이 남았구나. 다행히.”
심목수는 딸에게 다가와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본 후에 휠체어를 밀며 전시장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네가 만든 의자들은 천사들이 앉을 의자구나. 장하구나. 역시 목수의 딸이야.”

 

 

 

 

 

 임 정 진 동화작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