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음도 대인관계에 도움된다?
수줍음이 많다는 건 정말 부정적인 것일까? 성격이 활발하고 새로 만난 친구나 선생님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 줄 아는 아이에 비해, 대인관계에 워밍업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아이는 사회적으로 뒤쳐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꼭 그렇지는 않다. 아니, 오히려 수줍음이 많은 아이만의 강점을 잘 발달시킨다면 훌륭한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

“우리 첫째는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아이들과 쉽게 못 어울려요. 둘째는 처음 만난 아이들과도 이런 저런 놀이를 하면서 금세 친해지는데, 첫째 아이는 둘째 애가 새로 사귄 친구들과 노는 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요. 사내 녀석이 저렇게 수줍음이 많아서 나중에 학교 들어가면 하고 싶은 말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수줍음 많은 6세 아들을 둔 한 어머니의 하소연이다. 적극적인 자기주장과 자기표현이 대세인 요즘, 우리 아이가 또래들 사이에서 제 목소리를 못 낼까 걱정하는 마음은 당연하다.
수줍음도 대인관계에 도움된다?
수줍어하는 성격은 대인관계 대처에 방해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수줍어하는 성격의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 말이나 행동을 주고받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고 의사소통에 미숙하며, 이런 특성이 또래 친구에게 다가가기 힘들게 만든다. 또래로부터 ‘별로인 아이, 재미없는 친구’로 여겨지게 된다. 자기주장, 자기표현을 강조하는 문화권일수록 수줍음을 더욱 문제의 소지가 있는 성격특성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수줍어한다고 해서 모두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독일의 심리학자 아센도르프는 ‘수줍음’이라는 성격적 특성이 어떤 상황에서 나타나는지에 따라 사회성이 다르게 발달한다고 보았다. 친밀한 또래 친구와의 관계에서조차 심한 수줍음을 보이는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만 처음에는 낯설어하다가도 어느 정도 친밀감이 쌓인 후부터는 잘 적응하는 아이라면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연구팀은 영유아기에 수줍어하는 특성을 보인 사람이 성인이 되어 오히려 건강한 대인관계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이들은 9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3세 때의 기질 성향이 21세 때 대인관계 능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무려 18년을 추적 조사하였다. 그 결과,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서 수줍어하는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성인이 되었을 때 보다 건강한 이성 관계를 발달시켰고, 반사회적 행동 문제를 일으키는 경향이 낮았으며, 직장에서도 대인관계에 보다 잘 적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계의 질이 좋았던 것이다.
이처럼 수줍음 타는 성격의 긍정적 측면을 조명한 연구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낯선 상황, 낯선 사람에 대해 어색해하는 수줍음’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친구들과 사귀는 것을 주도하거나 대인관계 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지만, ‘친밀하고 익숙한 관계가 되면 어느 정도 자연스러워지는’ 성향의 경우에는 충분히 적절한 사회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수줍어하는 성격이 때로는 더 나은 대인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까지 이야기한다.
물론 이런 주장이 쉽사리 납득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활발하고 친구를 왕성하게 잘 사귀는 성격이라야 사회성 좋고 대인관계도 잘 이끄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관계의 시작에 서툰 성격이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상대하는 데 있어 딱히 유리할 것도 없지 않은가? 수줍음 타는 아이들이 대인관계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리더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하다는 말인가? 이러한 의문의 해답은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에 있다.
앞에 나서서 큰 소리로 자기주장을 하거나 활발하고 씩씩한 모습을 보이는 리더십도 있지만, 차분하고 사려 깊은 말이나 행동, 올바른 통찰로 신뢰감을 갖게 하는 리더십도 있다.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은 후자의 리더십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다.
3자적 시각의 장점
그렇다면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서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도움을 준다는 발상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일까? 미국 미시건대학교 웰만 교수는 마음이론(Theory of mind)을 통해 이를 설명한다.
심리학의 대학인 웰만 박사의 ‘마음이론’이란 말 그대로 마음상태에 대해 이론을 가정하는 것을 말한다. 즉 어떤 사람이 겉으로 표현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고, 왜 그 사람이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그 속마음을 추측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마음이론이 어떻게 발달하는가에 늘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수줍고 온순한 기질의 동물이 사람의 의도나 욕구를 잘 파악한다는 동물연구의 이론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인간의 경우에도 수줍어하는 성격이 마음이론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에 웰만과 그의 동료 학자들은 어린 유아들을 대상으로 성격과 마음이론 능력 간의 관계를 분석하였고, 수줍어하는 성격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유리하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무엇이 그러한 관련성을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수줍음 많은 아이의 ‘관찰하는 성향’이다.
활발한 성격의 아이는 다른 또래 친구와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지만, 수줍음을 타는 아이는 다른 아이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이나 행동을 지켜볼 기회가 많아지고, 직접 참여하기보다 한 발 물러나 관찰자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오히려 차분하고 객관적인 통찰이 가능해지며, 결과적으로 누군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 무슨 의도로, 무엇을 원해서 그러는지 자연스레 추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이후 보다 과학적 방법을 동원한 다양한 연구들을 통해 그 설득력이 더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남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과 사람들을 이끄는 능력 간에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일까? 다른 사람의 욕구나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다면 보다 쉽게 그 사람과 의견을 조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 간의 관계도 중재할 수 있다. 또한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원활하게 달성하기 위한 사회적 기술도 발달하게 된다. 이렇게 관계를 조정하고 목적을 달성하는 능력은 여러 사람을 아우르는 리더십과 직결된다. 얼핏 리더십 하면 목소리 크고 활력이 넘치는 모습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의외로 수줍은 아이가 차분하고 통찰력 있으며 구성원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소통의 리더’로 성장할 수 있다. 이는 수줍음 많은 아이를 둔 부모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수줍음 속 리더십, 부모가 깨운다
“리더십은 유전이 30%, 환경이 70%”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리더십을 기르기 어렵다는 말이다. 환경 중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는 부모다. 아무리 리더로서의 자질을 타고 났어도 잘못된 양육환경을 만나면 리더십을 발휘할 가능성이 현격하게 줄어든다. 반대로 리더로서의 가능성을 단 몇 %만 가지고 태어났어도, 부모가 적절한 방식으로 대한다면 적은 가능성을 결정적인 능력으로 키워낼 수 있다.
더욱이 수줍음이 많은 아이일수록 민감하고 섬세한 대처가 요구된다. 수줍음은 억제성향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가 활발하고 적극적인 리더십을 갖출 것을 강요한다면 아이는 더욱 위축되어 자신의 능력을 숨겨버리고 만다.
수줍음 타는 아이가 리더로서의 자질을 갖게 하려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인관계에서 조화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앞에 나서서 큰 소리로 자기주장을 하거나 활발하고 씩씩한 모습을 보이는 리더십도 있지만, 차분하고 사려 깊은 말이나 행동, 올바른 통찰을 바탕으로 신뢰감을 갖게 하는 리더십도 있다.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은 후자의 리더십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다.
수줍어하는 아이가 리더로 성장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요구된다.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를 보면서 리더십이 없는 것 같다고 답답해하지 말자. 긴장이나 불안감이 지나치게 높은 아이가 아니라면 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다. 부모의 따뜻한 시선과 신뢰 속에서 아이는 조금씩 자신의 잠재능력을 깨워갈 것이고, 말과 행동을 앞세우기보다 다른 사람의 표정, 말투 등을 조용히 관찰함으로써 타인의 마음속을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게 될 것이다.
수줍음은 리더로 성장하는 데에 결코 불리한 성격특성이 아니다. 차분하게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며 섬세하게 다루어주는 부모의 태도를 통해, 수줍음 많은 아이들이 지적이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로 성장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하수정 대표의 "수줍음 많은 아이를 리더로 키우는 양육법"
수줍음 많은 아이의 리더십 잠재능력을 깨우려면 어떤 말과 태도가 필요할까? 무조건 부모로서의 애정만 보여주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조급해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걸까? 물론 애정, 기다림 모두 중요하다. 그렇지만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이 부모의 양육에 있어서도 마음만 가지고 있기 보다는, 긍정적인 마음과 함께 적절한 기술적 방법을 함께 사용할 때 훨씬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수줍음 많은 아이가 리더로서의 자질을 갖게 하기 위한 양육스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인관계에서 자신감을 갖도록 격려해주는 양육법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아이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다음과 같은 사항에 유의하자.
- 아이가 수줍어할 때 도와준답시고 아이 대신 말해주지 말기
“너 몇 살이니?”라는 낯선 사람의 질문에 아이가 머뭇거릴 때 “얘 올해 다섯 살이에요”라고 대신 말해주면 아이는 스스로 답할 기회를 잃는다.
- 억지로 말하도록 달래거나 강요하지 말기
답답한 마음에 “넌 왜 대답을 안 하니? 이럴 때는 얼른 네 생각을 말 해야지!”라고 다그치지 말자. 안 그래도 수줍은 아이가 위축돼 더욱 말을 못하게 된다.
- 타인에게 아이가 수줍어한다고 소개하지 말기
아이 앞에서 타인에게 “우리 애는 워낙 수줍음이 많아서 말을 잘 못 해요”라는 식으로 소개하는 것은 금물이다. 아이가 스스로를 ‘수줍어서 말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찍게 된다.
- 아이 스스로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단계를 발견하도록 도와주기
수줍지만 조금 지나면 편해지는 단계가 있다. 아이 스스로 이 단계가 언제쯤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긴장과 불안이 많이 완화된다.
- 뒤로 물러나 아이가 타인과 자신만의 관계를 갖도록 도와주기
“쟤한테 이 장난감 가지고 가서 놀자고 해봐”라고 부모가 나서면 아이는 스스로 관계를 시작해볼 수가 없다. 답답해도 일일이 개입하지 말자.
부모 스스로 편안하면 아이도 편안해진다. 편안해진 아이는 침착하게 자신의 사회성을 발달시키게 된다. 또한 평소 수줍어하던 아이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전적인 모습을 보였을 때 반드시 칭찬해주자. 인정받는다고 느낄 때 아이는 대인관계에서 자신감을 갖게 된다. 잊지 말자. 수줍은 아이가 대인관계 능력을 갖게 될 때 훌륭한 소통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와 남의 속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화법
수줍음이 리더십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른 사람의 욕구나 의도를 잘 파악하는 능력을 기르려면, 부모가 자녀와 대화할 때 가급적 나 또는 다른 사람의 마음 또는 정신 상태를 다루어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다음의 예시를 통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예시 1) 아이 아빠 생일 선물을 몰래 사서 아빠를 놀라게 해드리자고 했는데, 아이가 참을성 없이 아빠에게 말하고 싶어 한다면?
- 마음상태를 다루지 않는 화법 : “아직 말씀드리면 안 돼! 아빠가 생일날 열어보실 거야.”
- 마음상태를 다루는 화법 : “아빠가 뭐가 들었는지 모른 상태에서 선물 상자를 열어보셔야 깜짝 놀라시지 않겠니? 그러니 비밀 지키자.”
예시 2) 엄마가 잃어버린 물건을 아이가 찾아 주었을 때
- 마음상태를 다루지 않는 화법 : “휴, 여기 있었네. 찾았으니 이제 됐다.”
- 마음상태를 다루는 화법 : “이게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알았니? 나는 아까 책상에 놔둔 줄 알고 엉뚱하게 책상 속만 뒤지고 있었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