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의 이노베이션 스토리
K-POP과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케이팝(K-POP)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세계적 흥행을 보면서 이런 현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해 본다. 한류를 단순히 문화상품의 수출 관점에서 보지 말고 恨(한) 많은 민족이 5천 년을 거치면서 축적해 온 고난과 극복의 역사 속에서 세계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극복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 가치를 통해 전쟁과 정복이라는 기존 죽임의 문명에서 벗어난 연대와 화합이라는 ‘홍익인간’적 가치로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널리 인간에게 이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기회와 함께 한민족이 솔선수범하면서 보여주고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을 적어본다.

요즘 케이팝(K-POP)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식을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보다도 해외에서의 인기가 더욱 높다고 한다. 이런 기현상에 대해 전남대학교 철학과 박구용 교수가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설명한 얘기가 있다.
지난 300년 동안 서구 선진국들의 역사는 ‘정복 서사’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아도 영웅이 탄생하고 상대를 정복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묘사했고 일반 대중의 인식도 맥을 같이 했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갖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면서 발전해 온 역사이기에 ‘극복 서사’가 담겨있다는 것이 서양인들에게 현재 그들이 처한 현상과 맞물리며 가슴속 깊이 공감하기에 우리의 서사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복 서사가 만든 죽임의 문명과 인간의 소외
박구용 교수의 말처럼 정복 서사는 서구인들의 생활과 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렸기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일상생활 모든 면에 암묵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주의 역시 정복 서사에 영향을 받아 승자독식의 정치를 만들었고 자본주의와 결합한 경제 역시 승자독식의 경제로 인해 불평등과 양극화를 만들었지만 계속해서 정복과 발전의 사고로 경제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멈출 줄 모르는 폭주기관차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는 과거와 다른 환경이 주어지고 있다. 서구 선진국들의 국력이 예전과 같이 견고하지 못하고 쇠락하고 있다. 인구 소멸과 고령화로 경제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정치는 기득권 중심으로 서로 권력을 공유하면서 민주적 가치를 소홀히 하고 있으며 경제적 불평등과 함께 극우세력의 등장을 부추기고 있어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 와중에 무한 경쟁에 내몰려 나약해진 개인들은 경쟁에서 밀려나면 소외되고 아직 경쟁 중인 사람들은 탈락의 두려움과 사회적 안전망 없이 개인이 각자 알아서 생존하라는 암묵적 메시지로 인해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있으며 위축되고 있다.

한 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죽임의 문명을 만들어 놓은 현실 속에서 세계가 모두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전 세계를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공통된 주제를 가진 적이 없었다.
세상서 가장 암울한 국가의 경험에서 위안 받아
1950~1953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이 대략 60년의 짧은 기간 동안 경제적, 정치적으로 이룩한 업적은 경이로웠다. 최빈국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공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내고 IMF 금융위기도 극복하며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의 초입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고속의 압축적인 성공은 대가를 요구했다. 무한 경쟁과 승자독식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국가’가 되었다. 미국 작가 마크 맨슨은 우리나라가 가장 우울한 국가가 된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억압과 기업의 무한 경쟁 요구에 개인들이 희생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한 사회 전체가 개인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구 유럽의 선진국들이 300여 년의 기간 동안 경험한 역사를 60여 년 만에 달성한 후유증은 매우 비참하다. OECD 국가 중 1위의 자살률을 지난 20여 년 동안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전쟁과도 같은 일상 속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들의 극복 서사가 비슷한 상황에 처한 21세기 전 세계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억압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사례로써 공감대가 형성되어 케데헌의 인기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며 같은 아픔을 공유하면서 힐링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에 케데헌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계속 지속되는 것 같다.

인류가 이렇게 대동단결한 사례가 있을까?
한 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죽임의 문명을 만들어 놓은 현실 속에서 세계가 모두 같은 아픔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전 세계를 하나로 아우를 수 있는 공통된 주제를 가진 적이 없었다.
힘의 논리로 정복과 지배의 시대가 유지됐었기에 승자의 논리에 패배자는 억압되는 상황이었다. 겉으로 드러내지도 못했지만 이제는 한국이라는 동지가 생겼다. 모두 같은 눈높이로 세상의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공통의 문제는 바로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물론 지구상의 생명체들도 죽이고 있으면서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는 ‘야수 자본주의’와 ‘대의민주제’를 전면 개편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먼저 개척을 하면서 해법을 찾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홍익인간(弘益人間)’을 들으면서 살아왔다.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물으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로 얼버무린다. 하지만 이 단어는 은연중에 우리의 삶 속에, DNA 속에 스며들어 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을 풀어보자. 널리라는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의미한다. 온 인류가 함께 살고 있는 지구촌이다. 이롭게 한다는 것은 인류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을 이롭게 하겠다면서 발명한 많은 문명의 이기들을 보면 좋은 면도 있지만 이를 악용하는 세력들에게는 인간을 헤치는 무기로 돌변하는 것을 많이 봐왔다.
물론 세상은 항상 좋은 것만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나쁜 것을 무조건 수용할 수도 없다. 이때 필요한 것이 양날의 칼과 같은 문명의 이기들을 좋은 기능과 나쁜 기능들이 서로 견제하면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롭게 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힘과 기술로 무장했던 제국주의가 주로 백인 남자들이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무지하고, 미개한 인종들을 신의 이름으로 문명화 시킨다는 억지 논리로 나머지 나라들을 침략하고, 토착민들을 노예로 만들고, 자원과 부를 수탈해 갔던 역사는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널리 해롭게 하면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복 서사’의 핵심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처럼 자신들의 승리의 역사만을 교육받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이런 편향된 사고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축소되고 만다. 유럽의 젊은이들도 자신들의 역사마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세계사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까운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음을 대화를 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그들에게 ‘케데헌’이나 ‘촛불 혁명’과 빛의 혁명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 투쟁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게 되는 것은 문화적 충격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잣집 도련님처럼 세상 물정 모르고 살던 자식들이 부모의 사업 실패와 함께 벼락 거지가 되고 난 후 갖은 고생을 하면서 움츠려 들고 소외되어가면서 죽을 지경이 된 것이다.
특히 영화 ‘기생충’이나 드라마 ‘오징어 게임’, 애니메이션 ‘케데헌’이 실제 한국인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을 한국을 방문하면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있기에 공감의 정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의 국민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자신들만 비참한 생활을 한다고 믿고 있던 상식이 무너지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포기하고 수용했던 현실의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됐을 것이다.
한류의 바람으로 인류는 모처럼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이 솔선수범하여 보여주고 있는 민주주의의 모험을 보고 함께 행동한다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실험이 인류의 미래 개척할 것
사실 호모 사피엔스는 단일 종이다. 전 세계 흩어져 살고 있는 인류의 DNA를 비교해 보면 0.1%만 다르다고 한다. 인종이라는 개념도 생물학적으로는 명확하지 않고, 주로 사회적, 역사적 분류에 가깝다고 한다. 우리의 족보 기준으로 본다면 인류는 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인류는 지구촌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희로애락이라는 공동의 삶 속에서 함께 웃고, 울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사랑하고, 행복해하면서 살아가지만 실패와 좌절과 후회 같은 반대의 경우도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끼리 왜 이래?”라는 우리 표현이 있다. 한 가족인데 왜 서로 싸우고, 정복하고, 지배해야 하는지 되물어봐야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우리 개개인이, 국가 차원에서는 국민이, 세계 차원에서는 세계시민이 스스로 주권을 회복하고 세계시민을 위한 정치와 경제를 요구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권리를 그동안 우리는 대신해 달라고 정치인들에게 맡겨 놓았던 것이고 무책임했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중간 정리를 한번 해보자. 5천 년 전 단군의 건국이념이었던 ‘홍익인간 세상’은 단일 종 호모 사피엔스들이 한 가족으로서 서로 이롭게 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겠다.
그동안 분열과 혼란의 역사에서 벗어나 통합과 연대 속에서 안정된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다. 홍익인간 세상은 고도의 과학기술이나 난해한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인류의 삶의 본질을 두고 먹고사는 문제를 우선 해결해 주고 자아실현을 통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실제로는 복잡하기에 이론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실상 권력을 쥐고 있는 기득권이며 지배계급들이다. 국민이 주권을 잠시 맡겨 줬더니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세상을 만들어 왔기에 이리 된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이 다시 주권을 되찾아와야 한다. 대의 민주제보다는 직접 민주제를 통해 주권을 회복하고 대리인들이 정치를 잘못할 때는 대한민국이 두 번이나 직접 뽑은 대통령을 탄핵하면서 끌어내렸던 것처럼 권리를 행사해야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울지 않는 아이 젖 안 준다’라는 속담이 있다. 배가 고프면 울어야 엄마가 이를 알아채고 젖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알아서 해 주겠지’는 불편한 것이 없으니 조용하고 가만히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을 때 ‘말뚝만 꽂아 놔도 당선된다’라는 변화를 거부하는 지역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득권에게만 유리하게 고착되어 간다. 반면 필요에 따라 적합한 국회의원을 뽑는 지역은 발전을 할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를 이해하면 된다.
고대 시절부터 중세 암흑기를 거쳐 근대국가로 발전해 온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국민이 똑똑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소수의 지배계급만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산업화를 위해 집단 교육이 필요해지면서 시작된 전 국민 교육은 문맹률을 떨어뜨리면서 국민이 눈을 뜨게 만들었다.
정보화와 인터넷의 등장은 가짜 뉴스, 조작된 정보 전파 등 악영향이 있지만 반대 급부로 질 좋은 정보와 국민의 시각을 넓혀 주는 좋은 채널들도 등장하면서 국민의 지식의 수준을 한층 더 높이고 있다.
이제는 개인이 웬만한 전문가들보다도 더 폭넓게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등장하고 있다. 정치가나 지도자들 보다 더 똑똑하고 현명해진 국민에게 대의 정치는 이제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어질 것이다. 직접 민주제를 통해 국민의 정치 참여를 높여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실현될 때 홍익인간 세상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변화나 혁신을 추진할 때 단계가 있다. 우선 사람들의 생각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게 되고 바뀐 행동이 반복되다 보면 습관이 되어 변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한류의 바람으로 인류는 모처럼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이 솔선수범하여 보여주고 있는 민주주의의 모험을 보고 함께 행동한다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것이다. 바뀐 생각이 습관이 되도록 세계시민들이 연대와 함께 상호 협력을 한다면 변화는 완성이 될 수 있다.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전쟁보다는 평화가 우선돼야 변화의 과정이 무너지지 않고 성공을 할 수 있다. 다행히 지구상의 두 강대국 미국과 러시아가 전쟁보다는 평화를 선택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는 냉전이 가져다준 어쩌다 평화를 경험했다. 전 세계가 경제발전과 성장의 맛을 보았다. 전쟁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첫 경험은 어쩌다 겪게 됐지만 이제는 학습효과가 있다. 전쟁과 분열을 멀리하고 평화와 번영의 길로 들어서면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오늘날 인류의 희망이자 함께 만들어 갈 미래가 될 것이다.
글 이성우 경영혁신연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