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의 이노베이션 스토리
법치와 정의를 무시하는 것을 넘어 파괴하려고 하는 극우세력이 등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통치자 역시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자기 멋대로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동맹국들을 무시하고 조롱하면서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을 돈으로 판단하고 있다. 합리적 이성에 의한 결정보다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해괴한 논리로 자기들만을 위한 기준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고 있다.

구한말이나 오늘날 국가는 위태롭고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 같지만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거나 최소한 걱정하는 사람들은 힘없는 일반 백성들이다. 기득권들은 오히려 이런 현상을 즐기면서 기득권을 강화시킬 방법만 찾고 있는 것 같다. 국가의 위기를 항상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은 지배계층보다는 피지배계층임을 오늘날에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국가가 ‘무덤에서 요람까지’ 책임지겠다던 복지국가 개념은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 국가의 위기도 별로 고민 안 하는 정부가 국민들의 복지를 책임지겠다는 것에는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독일의 필립 바구스와 안드레아스 마르크바르트 교수가 쓴 《왜 그들만 부자가 되는가》를 읽으면서 국가와 지배계층들이 겉과 달리 속으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복지국가라는 허울 좋은 개념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부동산 거품과 붕괴의 반복, 경기 침체와 불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현 경제정책으로 인해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먹고 살기 위한 투쟁으로 인해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복지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한데 그때마다 세금을 인상하는 것은 부자나 빈자나 반대하는 것이므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도 불평등이 존재한다.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기업이나 부자들에게는 감세를 해준다. 논리적으로 본다면 반대로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서민 감세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나 부자 증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보수가 정권을 잡던 진보가 정권을 잡던 서민들에게 세금을 덜 걷겠다는 소식은 들어 보질 못한다. 이 또한 불공평한 것이다. 정부는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보다는 빚을 지는 것을 선택한다. 채권을 발행한다. 그러면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면서 시중에 속된 말로 돈을 뿌리는 것이다. 망하기 전까지 할 수 있는 무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시작한다.
시중 은행들은 중앙은행이 정한 기준금리를 기준으로 장부상으로 움직이는 돈을 확보하고 지급 준비율 기준만 채운 후 거의 10배(지급 준비율 10%로 가정)에 가까운 돈을 대출을 해준다. 갑자기 중앙은행이 발행한 통화량보다 대략 10배가 넘게 시중에 돈이 뿌려지는 것이다. 은행은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기적과도 같은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이다. 거품을 만들 재료가 준비된다.
어떤 담보도 없이 이뤄진다. 그러므로 은행에 돈을 맡긴 고객들이 한 번에 돈을 돌려 달려고 몰리면 줄 돈이 없어서 은행이 파산하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뱅크런(bank run)’이란 뉴스를 들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다행히 요즘에는 예금자 보호법이 있어서 일정 금액까지는 원금을 보장받지만 이런 제도가 없던 시절에는 실제로 예금주들의 돈이 사라지는, 도둑맞는 일이 벌어졌었다.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니면서 사회 시간에 배웠던 것은 국민들이 은행에 저축을 하고 기업들은 이 돈을 대출받아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국내에 축적된 자본을 담보로 은행은 기업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성장하는 기업들은 수익을 창출해 대출금을 갚으면서 예금주들에게 이자와 함께 되돌려주는 사이클이 정상이라고 했다.
오늘날은 이러한 상식이 깨졌다. 국민들이 저축을 하지 않아도 정부가 빚을 내면서 가상의 돈을 통해 대출을 일으키는 것이다. 실제 담보보다도 훨씬 더 많은 돈을 찍어내고 금리를 낮추면서 경기를 부양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경기 과열을 일으키면서 증가된 통화량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경제에 거품이 생기는 사이클로 경제가 운영된다. 본격적인 거품 만들기가 이뤄진다.
미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사전트의 EBS 위대한 수업 ‘돈이란 무엇인가’ 강의에서 “인플레이션은 누구에게나 부과되는 부유세와 같은 세금이다”라고 설명했다. 국민 모두에게 부여되는 것이다. 부자들에게는 미미한 금액이지만 서민들에게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므로 이 또한 불공평한 분배다. 그러나 정부는 인플레이션에 의한 물가의 상승에 따라 세수가 증가하는 재미를 본다.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소득이 줄어든다. 하지만 부자들은 자산 가격 상승에 따라 앉아서 돈을 벌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 피드백 되어 발산하면서 더욱 거품을 커지게 만들다가 결국 붕괴된다.
냉전이 끝난 후 신자유주의 바람과 함께 진행된 세계화의 속에서 자본주의는 정부와 기득권과 슈퍼 리치, 그리고 정치인들과 함께 비상식적인 사이클을 운영하면서 양극화를 본의 아니게(?) 만들어 온 것이다. 세계시장에서 1등 아니면 2등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장을 생존전략으로 받아들인 기업들은 승자독식의 자본주의를 구축했다. 이런 경제체제에서는 기업의 생산성 증가로 인한 근로소득의 증가 속도가 자산 소득의 증가 속도를 따라 잡지 못하기에 부자는 더욱 자산이 증가하고 서민들은 근로소득 감소로 인해 더 가난해진 것이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자본론》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결국 대다수 국민은 가난해지게 되고 사회 불만과 갈등만 남게 된다.

무엇을 모르고 있었나?
전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이 오늘날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들이 있다. 이 두 가지 제도는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냉전이 종식되고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장담을 하면서 환호했었다. 그런데 외부의 적이 없어지고 나면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말이 현실이 되는 것인지, 요즘 우리를 비롯한 많은 선진국의 골칫거리는 다름 아닌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법치와 정의를 무시하는 것을 넘어 파괴하려고 하는 극우세력이 등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통치자 역시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자기 멋대로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동맹국들을 무시하고 조롱하면서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을 돈으로 판단하고 있다. 합리적 이성에 의한 결정보다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해괴한 논리로 자기들만을 위한 기준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과연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갖게 되고 파시즘에 의한 독재 정권의 등장을 우려하는 등 불안함을 감출 수 없다. 무엇이 이런 현상을 가져오게 했는지 원인 파악도 제대로 안 되고 오로지 서로 상대방 탓을 하면서 갈등은 증폭되고 서로 등을 돌리고 마주하지도 않는다. 경제적 양극화뿐만 아니라 정치적 양극화도 진행되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결국 수명이 다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 동물과 다르다고 하는 인간도 먹지 않고는 살수 없다. 먹고 사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했고 발전해서 세계 GDP는 계속 성장했다고 하는데 국민들의 삶은 양극화로 인해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다. 그런데 슈퍼 리치들은 더 부자가 됐다고 한다.
그동안 대다수 국민이 열심히 일해서 일궈낸 경제성장의 과실이 편중되어 분배된 결과 자산이 빈약한 중산층은 근로소득에 의존해 살아왔지만 자산이 풍부한 슈퍼 리치들은 자산에 의한 소득이 대폭 증가했기에 근로소득에 의존했던 중산층들은 무너지고 슈퍼 리치들은 앉아서도, 잠을 자면서도 돈을 버는 ‘도깨비 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먹고살기가 힘들어지면서, 실직을 당하면서,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공공의 적을 만들어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아갔기 때문이라고 외국인 혐오증이 일어나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증가하면서 젊은 남성들 간 여성을 비하하는 성차별적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오히려 이런 갈등을 조장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만을 챙기려는 한심한 사람들이 있는 것도 문제다.
근로소득은 감소하지만 자산 소득은 증가하는 악순환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잘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중산층들도 자산 소득을 증가시켜 같이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부동산 투기, 주식 투기 등 투기성 경제활동에 매달렸다.
금리가 낮아지면 대출을 받아서 아파트에 투자를 하고 빠른 기간 내에 시세차익을 남기고 팔아서 이익을 챙기는 방법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면서 빚도 자산이라고 외치며 행동에 옮겼다. 아파트로도 모자라 건물주가 되면 편안히 앉아서 임대료만 받으면 된다고 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에 지식산업센터 등 각종 상업용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큰돈을 번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됐다. 저렴하던 금리는 갑자기 인상되어 이자 부담을 걱정하게 되고 경기는 후퇴하고 있으니 돈을 갚을 길도 막막하다. 알뜰살뜰 모았던 알량한 재산마저 탕진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같은 순환 사이클에 올라탔는데 부자들은 성공한 투자를 했고 중산층들은 실패한 투기로 변질되어 가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앞서 소개한 《왜 그들만 부자가 되는가》에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온 숨어있는 핵심 원인을 소개하고 있어 정리해 보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1971년 미국이 금본위제도를 포기하면서 화폐 발행에 일종의 고삐가 풀린 것이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중앙은행이 보유한 금만큼, 다시 말해 언제든지 찾을 수 있게 맡겨 놓은 금액만큼 화폐를 발행하던 시절에는 인플레이션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물론 경기의 변동은 주기적으로 발생했지만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고 폭도 크지 않았기에 경기 침체 같은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종이로 된 돈을 중앙은행이 독점적으로 발행하고 시중은행들은 지급준비율에 맞춰 금과 같은 담보물이 없이도 고객이 맡긴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대출해 주면서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화폐의 가장 기본은 신용이고 교환인데 일종의 가상의 신용을 갖고 돈도 없이 돈 장사를 하게 된 것이다.
금리가 낮으면 이자 부담도 줄게 되니까 대출 수요가 증가할 것이고 기업에 투자하기도 하지만 가장 손쉬운 투자처는 부동산 관련 산업이 된다. 역사적으로도 부동산 거품의 생성과 붕괴가 불황을 만들어냈다.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유혹에 속아 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경제학자들이 바람을 잡는다.
정부는 세금을 더 거둔다고 하면 정권 유지에 어려움을 겪게 되므로 증세보다는 인플레이션을 택한다. 인플레이션은 일종의 간접세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부자들에게 인플레이션을 미미한 충격을 주지만 서민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화폐 가치가 하락한 것이 되므로 근로소득이 앉아서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부자는 앉아서도 돈을 벌지만 근로소득자들은 눈뜨고 앉아서 돈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기회마저도 불공평하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중앙은행 금리를 낮추고 화폐 발행을 늘려도 우선 은행, 대기업 등이 먼저 돈을 가져간다. 시중에 돈이 돌고 난 후에 서민들에게 차례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미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난 후에 서민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기에 그들만 부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서둘러 대출을 받아 아파트, 건물에 투자해 돈을 벌겠다고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몰려든다. 이렇게 가상의 신용을 이용해 대다수 국민의 부채를 늘리고 이 부채를 자신들에게는 이익으로 환산해가는 기득권들의 도깨비 방망이는 오래 가지 못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인해 부동산 거품, 주식 거품 등을 유발할 수밖에 없기에 거품이 붕괴되면서 불황이 필수적으로 찾아온다. 이미 기득권이 가져간 이익 때문에 부자 되기를 원했던 국민들은 부동산 가치 하락과 함께 부채만 떠안게 되면서 남 좋은 일만 시키고 마는 것이다.
세계화를 통해 세계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력 착취 수준의 인건비를 지급하면서 글로벌 하청업체로 전락시킨 것이었고 선진국들은 금융기관을 활용해 자산 소득을 증가시키는 것이 세계화의 숨은 뜻이었다.
해외로 공장을 이전해 국내 일자리가 없어지고 서비스업으로 대체하여 블루 컬러 근로자들의 안정된 일자리가 사라지고 비정규 서비스직의 증가로 실질소득이 감소하게 된 것을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임금수준도 낮췄다고 비난하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먹고 살기 힘들어지게 됐기에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가치 등은 뒷전으로 밀리고 돈이 더 중요시되고 있으므로 ‘아메리카 퍼스트’ 같은 구호와 선동이 먹혀 들고 있는 것이다. 원칙과 정의나 절차 등은 일종의 배부른 소리로 들리고 우리라도 배를 불릴 수 있는 정책과 선동이면 된다는 주장이 강하기에 극우세력의 성장과 파시즘의 부활 우려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부가 복지국가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과 함께 국민들은 공동체를 복원해 공동체를 통한 복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병행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정부에 의존한다면 정부의 권한이 커지고 궁극에는 관료화되어 가면서 국민들은 소외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국민들도 함께 노력하면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더 이상 속지 말자
한번은 대기업 사장 출신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경제를 잘 알고 있을 테니 우리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줄 것이란 착각과 기대를 갖고 선택했었다. 그렇지만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로 끝났다. 그 시기에 한 TV 광고는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고 외쳤다. 그와 함께 ‘대박’이라는 유행어까지 등장했고 지금까지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우리의 착각 속에 그들은 온갖 비리를 통해 자신들만을 위한 정책을 펼치면서 국민들에게는 일부 콩고물이나 던지는 수준으로 ‘먹튀’를 하고 떠났다.
사람을 자본이나 생산의 도구로 보는데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사람보다 돈이 더 앞서기 때문에 돈을 더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해내고야 만다. 위에서 살펴보았듯 자신들이 갖고 있는 화폐 발권력, 법안 제정 권력, 정책을 갖고 있기에, 악순환의 사이클을 언제든지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콩고물에 매달리다 거품 붕괴로 인한 자산 손실을 경험하지 말아야 한다. 가진 자산을 잘 지키는 것도 돈을 버는 것이다. 까먹을 경우는 빼앗기는 것이다.
어릴 적 학교에서 배웠던 상식이 붕괴된 오늘날 다시 예전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우리나라는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차관도 좋지만 국민들이 은행에 저축을 하고 은행은 기업에 대출을 해주면서 산업이 발전해야 한다고 배웠다. 실질적으로 저축을 해서 새로운 투자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축보다는 소비에 더 몰두하고 있고 은행은 저축보다도 저금리로 발행된 화폐로 대출을 해주고 편안히 이익을 챙기고 있다. 새롭게 돈을 찍어서 자금을 마련하기 때문에 투기와 투자 거품이 불가피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탐욕에 물든 경제제도의 잘못된 사이클을 되돌리는 것이 민주주의를 되살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만 인구 감소가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세계는 합계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젊은 층의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단지 기대수명이 증가해 예전 같으면 사라졌을 노령인구가 잔재하기에 인구는 계속 증가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가 줄어들게 되면 현재까지 설치된 생산시설이며 사회 간접자본 등이 쓸모없게 된다. 지금도 무분별하게 지어 놓은 각종 상업 부동산, 주택용 아파트 등이 방치되듯 남아돌고 있다. 경제의 무한 성장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류의 소비를 대체할 수 없다.
‘최대한’ 생산하고 ‘최대한’ 판매하면서 ‘최대한’ 소비를 하는 경제는 이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적정하게’ 생산하고 ‘적정하게’ 소비하는 경제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가상의 신용이 아닌 확실한 신용으로 이뤄지는 경제를 운영할 때 지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탐욕으로 인한 거품 생성과 붕괴의 악순환을 걷어 내면서 서로 믿고 함께 사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시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복지국가에 대한 막연한 망상을 버리자.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상식을 되새겨야 한다. 복지국가 개념이 없었을 때도 우리는 서로를 도와가며 잘 살 수 있었다. 공동체를 중심으로 상부상조해 기쁨은 더하고 어려움은 나누면서 함께 하며 살아갔다. 받은 만큼 보답하면서 살면 된다.
복지가 잘 이뤄진다는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높은 세금을 감당하면서 개인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국가가 지원해주는 것이기에 국민들도 만족하면서 제도가 잘 운영되고 있으며 그 결과 국민행복지수가 항상 상위권에 유지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가 투명하게 세금의 사용처를 보여주고 있기에 국민들이 신뢰하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높은 세금을 부담하지 않으면서 북유럽 국가들과 같은 복지수준을 요구한다면 정부는 부채를 통해 집행하는 악순환 사이클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이브리드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부가 복지국가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과 함께 국민들은 공동체를 복원해 공동체를 통한 복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병행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정부에 의존한다면 정부의 권한이 커지고 궁극에는 관료화되어 가면서 국민들은 소외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국민들도 함께 노력하면서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