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의 이노베이션 스토리
인공지능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신기술을 활용해 돈을 벌 생각만 하는 집단들이다.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세상은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 수밖에 없으니 인공지능 경쟁에 뒤처지면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고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용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에 투자하라고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지능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만이 지능을 갖고 있기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우월함은 동식물들을 함부로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편협한 사고를 정당화했었다. 그러나 동식물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인간만이 지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근거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례로 까마귀도 나뭇가지와 같은 도구를 사용해 좁은 관속에 들어있는 먹잇감을 꺼내는 실험 사례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식물들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자신들의 열매를 먹은 동물들이 돌아다니며 곳곳에 씨앗을 배출하는 간접적인 이동을 통해 번식을 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간혹 식물에게 해를 끼치기만 하거나 식물에서 영양분만 빼먹는 곤충이나 동물들에게는 그들이 싫어하는 냄새를 발생시켜 접근을 못하도록 하기도 한다.
숲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영역에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생태계의 밀도가 높아져서 치열한 생존 경쟁이 진행되면 새로운 서식지로 이동하기 위해 산불을 일으키고 산불의 힘을 빌려 불꽃이 먼 거리로 날아갈 때 씨앗을 함께 보내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이렇듯 인간만이 생각을 할 수 있거나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지식은 이젠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동식물들도 지능이 있음을 현대의 과학은 증명해 주고 있다. 이런 자연 생태계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이 생존을 위해 스스로 학습하고 터득한 지능들을 ‘자연 지능’이라고 불러보고자 한다.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 지능에 보면 자연과 관련된 인간들의 지능을 ‘자연 지능’이라고 정의했지만 인간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생물에게 폭넓게 적용해 보고자 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지능 고도화 기폭제, 언어
모든 생명체가 지능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 생존과 관련된 지능에 국한되어 있다. 사람이 다른 생명체들과 확연히 다른 점은 말과 글을 발명한 것이라 하겠다. 말을 하거나 글을 읽고 쓰기 위해서는 생각이라는 행동이 선행돼야 한다. 생존하고 직접적으로 큰 상관이 없지만 호기심, 궁금증이 생겼을 때 먼저 생각을 하고 표현을 한다.
글이 없던 당시에는 벽에다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후 문자가 발명되면서 지식이 축적되었고 다양한 의사 표시, 생각을 위해 지식은 폭넓게 확장되었고 문서나 책의 형태로 전수되고 있다. 이런 선순환 작용은 다양한 학문을 만들어 냈으며 지식의 폭발적인 증가와 함께 문명이라는 것을 만들어낸 것이다.
기술의 발전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라는 행동을 모방하는 기계를 만들어 냈다. 스스로 생각하고 학습할 수 있다고 해서 ‘인공지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앞서 설명한 자연 지능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자연 속에서 생명체들에 의해 생성된 지능이었다. 인공지능은 현재로서는 컴퓨터를 통해 컴퓨터의 프로그램 속에서 디지털화된 데이터와 정보들을 활용해 만들어지는 지능이라 하겠다.

자연 지능의 발전
고대 중국의 역사를 보면 선사시대 중국을 통치했던 복희씨가 등장한다. 주역 8괘를 만든 사람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그는 새와 짐승의 아름다운 문양, 자연의 변화 모습 등을 관찰하면서 자연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들과 생명체들이 갖고 있는 지능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만물의 이치를 구했다고 한다. 노끈으로 그물을 만드는 법을 알아내 물고기를 잡고 이를 응용해 짐승을 잡으면서 수렵 채집 시대에 식량의 안정적인 확보에 기여했다고 한다.
이어서 신농씨가 등장하면서 나무를 깎아 쟁기를 만들어 농경 기구를 통한 농업 생산성을 높여 식량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수렵 채집 시대에서 벗어나 농경시대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면서 정주생활과 곡식의 저장을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통치방식에도 변화를 주게 된다. 이때까지는 세습에 의한 권력의 이양이 아니고 훌륭한 지도자를 선정하고 그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중국의 태평성대라고 하는 요•순 임금이 등장하면서 집권적 정치제제로 변화하게 된다. 이 시기에는 통나무를 파내어 배를 만들고, 단단한 나무를 깎아 노를 만들어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먼 거리까지 이동하고 교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소와 말을 길들여 소달구지, 마차 등을 만들어 문명의 발전을 이룩했다.
이런 현상 모두가 자연에서 얻는 지혜와 생명체로부터 깨달은 지능들을 통해 기술을 발전시켜왔으며 자연의 생태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만들어 냈다. 자연을 파괴하는 일은 천재지변에 의한 것 외에는 인위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거의 없었다.
자연 생태계의 특징은 먹이 사슬 아래에서 각 개체들이 살아가며 흔적을 남긴다. 개체들이 죽거나 살아있는 동안 만들어 내는 부산물들은 재활용되고 서로에게 먹이가 되면서 남김없이 사라지면서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면서 생태계는 교란이 일어났다. 최 상위 포식자가 된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들의 삶을 위해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고 정복하는 것에 재미를 들였다. 계속해서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 문명의 발전이며 호모 사피엔스의 숙명인 것처럼 오만하게 행동하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그들은 생태계에 부산물이 아닌 폐기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폐기물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분해되지도 않고 환경을 오염시키면서 건전한 생태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렇게 자연을 파괴하고 불모지로 만드는 것을 경제 발전을 위해 당연한 것으로 주장하고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이것도 모자라 이제는 지능마저도 인공적으로 만들겠다고 난리 법석을 떤다. 인간을 초월하는 초월적인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을 통해 그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생산성을 높이고 돈을 더 벌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연뿐 아니라 사람마저도 파괴하고 정복하겠다는 해괴망측한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집단들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태초부터 인류는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연을 유심히 관찰하고 활용해 삶을 유지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해왔다. 초월적인 지식을 가진 기계에게 물어보고 배우면서 진화해 온 것이 아니다. 생명체들이 수 십 억년에 걸쳐 진화해온 것은 항상 좋은 방향으로만 진화해 온 것이 아니다. 당시 환경에 맞는 최상의 생존 방법을 찾아내고 적응한 결과이다. 때로는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기도 했으나 그 방법이 최적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빙하기를 버텨낸 인류들의 특징을 보면 혈당 수준이 높다고 한다. 갑작스레 닥쳐온 추운 날씨에서 생존하기 위해 혈액의 어는 온도를 낮추는 방법으로 혈액 속에 불순물이라 할 수 있는 당의 농도를 높여가며 추위를 이겨냈다고 한다. 빙하기가 끝나고 풍요로운 시대에 접어들어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게 되자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신체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적응하면서 살아온 자연 지능을 기계가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 간다. 특히 이 기계는 정보나 데이터를 0과 1로만 표현된 것에 의존한다. 디지털화된 정보밖에 인식하지 못한다. 아날로그 세상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아날로그 정보들도 디지털화되기 전에는 인식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세상의 일부 정보만을 갖고 스스로 학습해 영원히 발전만 하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고 인류를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기술 우월주의에 빠진 특정 집단의 헛된 망상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인공지능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 보다 인공지능을 통해 돈을 벌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 돈 때문에 영혼을 팔아먹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인공지능의 태생적 한계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 인류는 아날로그라는 연속적인 형태의 데이터, 정보들을 활용했다. 그래프로 표현해 보면 곡선 형태로 이어지는 그림이다. 컴퓨터의 등장을 촉발한 디지털이라는 0과 1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이진법은 곡선이 아니고 직선적으로 단절된 계단식 그래프로 표현한다.
사진도 인화지에 연속적인 이미지가 표현됐던 아날로그 사진과 연속적인 이미지를 0과 1로 코드화 하여 쪼개어 표현한 디지털 사진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거칠게 쪼개면 이미지가 왜곡되어 조잡한 사진이 된다. 미세하게 쪼개면 우리 눈이 구별할 수 없는 해상도로 원본 이미지와 비슷하게 표현을 할 수 있다.
디지털 사진, 디지털카메라, 디지털시계 등 세상의 사물들이 하나둘씩 디지털화되어 갔다. 사람도 디지털화되어간다. 물리적인 디지털화가 아니고 사람을 추상화하고 추상화된 정보를 디지털화하고 있다. 사람마다 다른 사람과 구별하거나 식별할 수 있는 고유번호인 주민등록번호나 고객번호, 직업정보 등 다양한 개인 정보가 디지털 정보화되고 있다. 이진법으로 운영되는 컴퓨터가 필요로 하는 것이 디지털화된 데이터와 정보들이기에 사물들의 디지털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런 디지털화된 정보가 있어야 스스로 학습이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인풋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인풋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보화의 진행과 더불어 인터넷의 등장과 확산으로 인해 세상은 이전에 가질 수 없었던 수많은 종류의 디지털 정보를 공유하게 됐다. 학술논문, 개인들의 사생활, 전자책 등 디지털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감정, 자연현상 등 아직도 아날로그 데이터, 정보는 무궁무진하다.

인공지능의 본질을 생각하자
여기서 우리는 거짓 선동에 휘둘리지 않고 인공지능의 본질을 볼 수 있도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인공지능은 생명체와 같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디지털 데이터의 생태계에서 디지털 정보를 참조하여 학습하고 인간들의 의사결정이나 추론 등을 모방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이나 동식물들처럼 반복된 학습과 실패를 통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고 자연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새로운 지식을 찾아내고 현상을 스스로 발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모두 아날로그 정보이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와 감정적인 교감이나 공감을 할 수 없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되면 인간의 감정도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은 생명체들의 감정도 세분하게 쪼개면 디지털화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감정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만을 놓고 보더라도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 지능’을 보면 현재까지 밝혀진 인간의 지능은 언어지능, 논리/수학적 지능, 음악지능, 공간지능, 신체/운동지능, 자연지능, 인간친화지능, 자기성찰지능, 실존적 지능 등이라고 한다.
이중 인공지능이 강세를 보일 수 있는 것이 언어지능을 모방하거나 논리적 지능을 모방하는 것이다. 특히 암기에 해당하는 기억은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이길 수 없다. 나머지 지능들은 디지털화 하기 어려운 지능들이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없으니 인간을 앞지를 수 없다.
어렵게 여러 학문을 동원해 설명할 필요 없이 간단히 얘기할 수 있다. 세상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는 곳이다. 세상을 디지털화 시켜 하나의 관점으로 통일할 수 없는 곳이다. 밤과 낮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밤이나 낮 중 어느 하나가 지배한다고 하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된다.
인공지능이 세상의 모든 것을 디지털화 하는 순간 세상은 무너지고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공지능은 자연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인공이다. 자연인 세상을 인공의 세상으로 만든다는 것은 아마도 컴퓨터 속에서 가상의 인공 세상을 만드는 수준이 될 것이다. 멀티버스, 아바타 등이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는 디지털 세상이므로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이 가능할 수 있을 수 있지만 태양과 함께, 달과 함께,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사는 아날로그 정보들이 넘치는 실제의 세상에서는 인공지능의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디지털 속에서 이분법적 사고와 함께 승자독식에 매몰된 죽임의 문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대인 살림의 문명을 생각해야 한다.
미세하게 쪼개고 나누어 정복하겠다는 ‘분할과 정복(Divide and Conquer)’이라는 사고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통합과 조화(Integrate and Harmony)’적 사고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법을 찾도록 인식의 전환을 이뤄야 한다. 디지털 세계에서 전환이 아닌 아날로그 세계로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왜 인공지능에 매달리는 것일까
앞서 살펴보았듯이 인공지능의 본질을 이해하면 더 이상 인류를 위협하거나 산업혁명을 가져다 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 사람을 포함한 생명체들이 사는 지구를 만든다면 인공적인 디지털 기계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생명체들이 사는 지구가 아닌 물질과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오로지 적과 나를 구분하여 상대방을 이겨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야 하는 기계문명 사회에서는 인공지능의 초월적 힘과 겨루기 힘들다. 그나마 바둑기사 이세돌이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알파고에게 유일하게 1승을 거둔 것을 보고 희망의 불씨를 살릴 수 있을 뿐이다. 불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들고 그 속에서 인간이 경쟁을 해야 한다면 패할 수밖에 없다.
이런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신기술을 활용해 돈을 벌 생각만 하는 집단들이다.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세상은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이 될 수밖에 없으니 인공지능 경쟁에 뒤처지면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고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용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에 투자하라고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이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야망일 뿐인데 이것이 어떻게 인류를 위한 4차 산업혁명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인지 되새겨 봐야 한다. 디지털화된 정보를 토대로 플랫폼이라는 덫을 놓고 다른 사람들의 정보를 활용해 천문학적 이익을 탈취하면서 극단적인 불평등과 극소수를 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숨겨진 목표이다. 산업혁명이 아닌 자본 탈취를 위한 돈벌이 수단일 뿐이다.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유토피아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그들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한 상술일 뿐이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인간의 지능 중 대표적인 것이 ‘자기성찰지능’일 것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성찰을 통해 성공도 하고 실수도 하면서 발전하고 성장해오고 있다. 인공지능은 이런 지능을 학습하거나 흉내조차 낼 수 없다.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알고리즘이 반영된 인공지능은 함께 살기보다는 승자독식만을 추구하기에 서로 얽혀 있는 세상의 원리를 무시하는 순간 스스로 자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한계이자 숨은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한 가지에 너무 몰두하거나 매몰되면 시야가 좁아지면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도는 경우가 많다. 해결 방법은 반대로 생각하거나 범위를 넓혀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아하! 유레카! 같은 함성과 함께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

디지털 속에서 이분법적 사고와 함께 승자독식에 매몰된 죽임의 문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대인 살림의 문명을 생각해야 한다. 미세하게 쪼개고 나누어 정복하겠다는 ‘분할과 정복(Divide and Conquer)’이라는 사고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통합과 조화(Integrate and Harmony)’적 사고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법을 찾도록 인식의 전환을 이뤄야 한다. 디지털 세계에서 전환이 아닌 아날로그 세계로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함께할 수 있는 세상, 분열과 갈등이 아닌 통합과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만드는 목표를 설정하다면 생각이 바뀌게 되고 그 결과 행동도 바뀌게 될 수 있다. 이를 무시하고 꼰대와 같은 사고로 지금 하고 있는 것, 가장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계속 추구할 경우 세상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강제로 반대되는 현상을 일으킬 것이고 역사적으로 보면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지만 기득권들이 원하는 세상이 아니어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 보여 불안해서 불확실하다고 속여가면서 수명을 연장시키려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가장 최적의 해법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실천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