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의 이노베이션 스토리

어느 한쪽이 이기는 경우는 역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음과 양으로 이뤄진 세상이 음이나 양으로 한쪽으로만 전환되어 혼자 남게 된다면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겉과 속이 다른 것은 나쁜 것이고 겉과 속이 같아야 바른 것이라고 하면서 바나나 같은 과일이어야 하지 사과처럼 속과 겉이 다르면 안 된다고 비유하곤 한다. 물론 상대방에게 신뢰를 심어줘야 하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마음이나 행동과 속으로 품고 있는 마음이나 행동이 다를 경우를 가급적 지양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생활에서 보면 겉과 속이 다른 경우를 자주 접한다. 매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표면으로 내세우는 구호들이 등장한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의사회 구현’이라고 했다. 촛불 혁명 후 들어선 정권은 ‘포용’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의사회는 그들을 위한 정의사회였다. 일반 국민에게는 차별이 강요된 사회였음을 알게 됐다. 포용 또한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포용이었지 진정한 국민화합을 위한 포용은 아니었다. 오히려 국민화합에 반하는 사람들을 포용이라는 명분으로 구제해 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겉과 속 중 한쪽을 너무 편향되게 강조할 때를 조심해야 한다. 갑자기 정의를 강조하거나 포용을 강조하는 것과 같은 쏠림 현상이 심할 때는 반대 급부가 무엇인지, 속에는 어떤 꿍꿍이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들어설 정부도 어떤 구호를 갖고 올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겪었던 경험에 비춰 새로운 구호가 너무 한쪽만을 강조할 경우에는 견제가 필요하다. 빛이 있으면 양지와 음지가 있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나 빛이 너무 강하면 음지의 어두움도 그만큼 더 짙어진다. 정권의 업적이 높다고 찬양하면 할수록 실정의 그림자 또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짙어지고 있을 수 있다.

그저 무난하게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정책에 대한 홍보도 적당히 하면서 양지와 음지가 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겉과 속이 다른 차이를 줄이는 길이 될 것이고 균형을 유지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최근 특정 정당이 과거와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것을 놓고 말들이 많은 것도 균형감각을 찾기보다는 자신들의 정책 방향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편협한 사고를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할 때 최고 지도자 등소평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했다. 대다수의 국민은 먹고 살기 힘들어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흰 고양이가 맞다, 검은 고양이가 맞다고 싸우는 것은 자신들을 위한 경쟁이지 국민을 위한 것이 절대 아니다. 서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공통점을 찾아 국민의 생활이 나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행하는 것이 정상적인 방법이다.

아마도 학자들 관점에서는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밀어붙여도 학술적 관점으로는 용납될 수 있을지라도 실생활과 실물 경제를 운영하는 관점에서는 뜬구름 잡는 얘기일 뿐이다.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지적 만족을 위해 행동할 때 벌어질 수 있는 결과이다. 그 결과는 국민의 실생활에 피해를 주는 경우가 더 많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사례들을 보아왔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면서 규제를 완화한다고 했지만 기득권이나 대기업들에게 유리한 규제 완화로 인해 골목상권이 무너지고 부의 불평등 배분으로 인해 양극화만 깊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권이 바뀌면 달라질 것을 예상했지만 일부 복지에 관해 개선되는 것을 제외하곤 기득권과 대기업에 유리하게 추진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겉과 속을 다르게 표현하면 양과 음으로 비유할 수 있다. 남자와 여자로 구분되고, 해와 달,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 등 반대되는 쌍이 서로 힘을 겨루면서 균형을 이루는 곳이 세상이기 때문에 겉과 속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 한쪽이 이기는 경우는 역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음과 양으로 이뤄진 세상이 음이나 양으로 한쪽으로만 전환되어 혼자 남게 된다면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만 있는 세상 또는 여자만 있는 세상에서는 후손을 낳을 수 없으니 종말로 귀결된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이자 협력자이지 갈라 치기로 적대화하는 것은 옳지 못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겉(진보)과 속(보수)이 다른 세상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것은 진보와 보수가 서로 다르지만 필요한 것을 인정하고 변화를 추구하면서 변화의 범위를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진보와 보수의 변화의 폭을 정하고 시소게임과 같은 안정된 균형(국민을 위한 삶)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갈등과 반목을 가져올 뿐 조화나 화합을 이루지 못한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함께 균형을 맞출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한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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