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가니니는 4옥타브에 걸치는 넓은 음역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다. 음을 하나하나 끊어 연주하는 스타카토(staccato),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으로 현을 튕겨서 소리를 내는 피치카토(pizzicato), 현에 손가락을 가만히 둠으로써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는 하모닉스(Harmonics) 등 이 모든 다양한 주법은 파가니니가 스스로 창안해 낸 것이다.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클래식 연주자들이 뮤지컬 곡을 부르거나 전자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화려한 퍼포먼스까지 더하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예전에는 크로스 오버(crossover)라고 하면 턱시도를 빼입은 성악가와 캐주얼한 차림의 가수가 각자의 스타일로 동시에 노래하는 정도였다.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 1941~ )와 팝 가수 존 덴버(John Denver, 1943~1997)가 함께 부른 <Perhaps love>나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의 <향수>가 그렇다. 이때까지만 해도 새로운 장르라기보다 두 장르의 만남 정도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대중의 눈높이에 따라 크로스 오버의 형태 또한 다양해졌다.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 1958~ )나 바네사 메이(Vanessa Mae, 1978~ ), 일 디보(Il Divo) 그룹 같은 클래식 연주법으로 대중음악을 전문으로 공연하는 크로스오버 연주자들이 등장했고, 정통 소프라노 조수미가 드라마나 영화의 OST를 부른다거나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영국 ‘로열 필하모닉’이 록 그룹 퀸의 곡을 편곡해 오케스트라로 공연하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클래식 연주자의 외모도 이전과는 사뭇 달라졌다. 미국 조지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Khatia Buniatishvili, 1987~ )는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관능적인 의상으로 무대에 오르고, 중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유자 왕(Yuja Wang, 1987~ )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의상에 살인적인 높이의 하이힐까지 신고 무대에 오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비판도 상당하다. 클래식은 응당 고상해야 하고 무엇보다 음악의 사운드에 가치를 둬야 할 연주자들이 현란한 의상과 화려한 쇼맨십으로만 관객들을 현혹하려 든다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세상은 급변하고 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이뤘듯 클래식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평온하다 못해 순식간에 잠들어버리게 만드는 바흐나 헨델의 바로크(baroque) 음악도 처음 등장했을 당시엔 지나치게 경박하다고 지적을 받았다. 바로크의 어원은 포르투갈어로 바로코(barroco),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인데, 당시 이런 음악을 낮잡아 부르는 의미로 ‘바로크’라 이름 붙인 것이다.

평균적으로 보자면 이전의 연주자들에 비해 현재의 연주자들이 훨씬 뛰어난 테크닉을 갖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실력이 부족해서 대중음악을 연주하고 화려한 비주얼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보다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며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고 시대에 맞는, 때로는 앞서나가는 진보적 무대를 통해 진화해 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요즘 시대 연주자들의 장르를 넘나드는 활동이나 화려하고 과감한 비주얼 경쟁은 머지않은 미래에 ‘뉴 노멀’이 될지도 모른다. 일각의 비판에 주눅 들지 않고 꿋꿋이 앞서나가는 연주자들에 의해서 말이다. 파격을 통해 그들은 새로운 스탠더드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악마적 매력을 지닌 ‘비르투오소’

훤칠하고 깡마른 몸매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신들린 듯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이탈리아 출신 니콜로 파가니니(Nicolo Paganini, 1782~1840)에게는 괴소문이 파다했다. “그의 바이올린 실력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그 대가로 얻은 것”이라는 것이다. 파가니니가 연주하는 공연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그의 바이올린이 뿜어내는 마성에 열렬한 팬이 되어버리고, 때로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기도 했다. 나폴레옹의 여동생 엘리자 보나파르트(Elisa Bonaparte, 1777~1820)는 그의 연주를 듣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까무러치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클래식 연주자들 중에 명인이라 불릴 만한 기교를 갖춘 연주가를 ‘비르투오소(virtuoso)’라 부르는데, 파가니니야말로 클래식 음악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비르투오소라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그 누구도 구사하지 못했던 템포와 테크닉으로 연주했기에 관객들에게는 묘기나 마술처럼 보이기도 했다. 모든 면에서 이전의 수준보다 월등하게 뛰어났기에 바이올린의 역사는 파가니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무방하다.

 

파가니니는 4옥타브에 걸치는 넓은 음역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다. 음을 하나하나 끊어 연주하는 스타카토(staccato),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으로 현을 튕겨서 소리를 내는 피치카토(pizzicato), 현에 손가락을 가만히 둠으로써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내는 하모닉스(Harmonics) 등 이 모든 다양한 주법은 파가니니가 스스로 창안해 낸 것이다.

파가니니는 자신의 실력을 뽐내기 위해 네 개의 현 중 단 두 개의 현만을 사용하는 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러자 어느 관객은 “혹시 현 하나로만 연주할 수도 있느냐?”라며 도발했고 그는 정말 G현 하나로만 연주하는 작품을 작곡하게 된다. 그리고 단 한 개의 현만으로도 현란한 연주를 선보이자 그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초절정의 연주 실력에 대한 소문은 물론이고 거기에 무시무시한 괴소문이 덧붙여졌다. 당시의 바이올린은 양의 창자를 꼬아서 만든 현을 사용했는데, 그가 소름 끼치게 연주했던 그 단 하나의 현은 파가니니가 젊은 시절에 애인을 살해하고 그녀의 창자를 꼬아 만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연주하는 것은 파가니니가 아니라 사탄이라는 소문은 그를 더 신비롭게 만들어주었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사탄의 능력으로 조종되는 연주를 듣고 싶어 했다.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슈퍼스타였던 파가니니는 1회 공연에 현재 가치로 약 1억 원의 개런티를 받기도 했다.

“공연 중 그의 발치에는 사슬이 감겨 있었고 ‘악마’가 나타나 그의 연주를 도왔다.”

-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

파가니니는 완벽한 연주뿐만 아니라 쇼맨십과 마케팅에도 능했다. 바이올린을 활로 연주하는 대신에 즉석에서 나뭇가지를 꺾어 연주를 시연하기도 했고, 바이올린으로 동물의 울음소리를 내며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일부러 줄을 끊고 남아 있는 줄로 더 열정적으로 연주해 관객을 흥분으로 몰아가는 수법을 썼다고도 전해진다. 당시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모두 이슈 거리가 됐다. 심지어 그가 즐겨 입던 옷이나 장갑, 장신구도 늘 유행을 만들어냈고, 그의 스타일을 본뜬 품목이 시장에 나오면 나오는 족족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파가니니는 자신의 테크닉을 더 독보적이고 신비롭게 남기기 위해 제자를 거의 두지 않았다. 그리고 생전에 출판사로부터 수많은 출판 제의를 받았지만 너무 높은 인세를 요구하는 바람에 계약은 성사되지 못했다. 공연 중에는 즉흥적으로 연주한 곡이 많았는데 출판으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악보 또한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가 이뤘을 초절정 기교의 테크닉들은 제자나 악보를 통해 내려오지 않았기에 아쉽게도 주변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 추측을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연주를 들어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묘사할 방법이 없다.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한다 해도 무감각한 철자와 죽은 단어의 나열, 그저 해독 불가능한 상형 문자에 불과할 것이다.”

공연 후 신문 논평

 

play list

<24개의 카프리스> 24번 A장조 작품 1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

24 Caprice for Solo Violin, Op.1 no.24

by Nicolo Paganini

곡명의 ‘카프리스(Caprice)’는 이탈리아어로 카프리치오(capriccio)라고도 불리며 ‘변덕스러운’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음악에서는 ‘기발한 발상을 옮긴 곡’을 뜻한다. <24개의 카프리스>는 파가니니가 자신의 연주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작곡한 곡이기에 풍부한 악상과 아르페지오(arpeggio), 스타카토(staccato), 더블 트릴(double trill), 중음 주법(double stops), 왼손의 피치카토 등 그가 구현해 낼 수 있는 모든 테크닉이 전부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중 24곡 A장조가 가장 유명하다.

파가니니가 살던 시대에 이 곡은 오직 파가니니 자신만이 연주할 수 있는 난곡 중의 난곡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전 세계의 바이올리니스트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고 넘어야만 하는 산과도 같은 곡이다. 32분 음표로 빼곡한 이 작품은 네 개의 모든 현을 쉴 새 없이 오가며 빠른 템포로 연주해야 한다.

파가니니 이전에 유럽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혔던, 이탈리아 출신의 로카텔리(Pietro Locatelli, 1695~1764)가 작곡한 〈24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카프리스(24 Capricci for solo violin)〉를 모델로 한 곡으로, 1817년 무렵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며 악보는 1820년에 출판됐다.

그의 연주 비법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은 리스트, 쇼팽, 슈만 등 동시대 작곡가는 물론이고 브람스, 차이콥스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라흐마니노프, 스트라빈스키 등의 후세 작곡가에게도 영감을 주었고, 이를 모티브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파가니니 잇는 다비드 가렛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연주를 언급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연주자는 지금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다비드 가렛(David Garrett, 1980~ )이다. 독일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가렛은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린>에서 배우로 출연해 이 작품 <24개의 카프리스>를 직접 연주했다. 줄리어드 음대 시절 모델로 활동한 경력이 있을 만큼 빼어난 외모의 가렛은 일찌감치 바이올린 연주에 천재성을 보였다. 4세 때 형이 배우던 바이올린에 관심을 갖게 됐고 바이올린을 배운 지 1년 만에 영국의 예후디 메뉴힌(Yehudi Menuhin, 1916~1999) 이후 가장 주목받는 신동으로 재능을 드러낸다.

11세가 되던 1991년에는 나치 독일의 책임과 반성을 촉구해 독일의 양심이라 불리던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Richard von Weizscker, 1920~2015)의 특별 초청을 받아 공연을 했는데, 연주에 큰 감명을 받은 대통령은 어린 가렛에게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대여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이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우스 중에서도 ‘황금시대’(1700~1720) 중 가장 좋은 스트라디바리우스인 ‘산 로렌조(San Lorezo)’라는 유명한 명기(名器)이다.

가렛은 예후디 메뉴힌뿐 아니라 영국의 이다 헨델(Ida Haendel, 1928~ )과 미국의 아이작 스턴(Isaac Stern, 1920~2001) 등 이름만 들어도 감탄사가 나오는 전설적인 바이올린 거장들을 사사했으며, 13세에는 최연소의 나이로 도이치 그라모폰(Deutche Grammophon)과 ‘바이올린 솔리스트’로 음반 발매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14세에는 파가니니의 전곡을 연주하며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콘서트를 열었고, 그의 야외 공연은 언제나 매진을 기록했다.

1996년에는 영국 런던의 왕립 음악대학(Royal College of Music)에 입학했으나 자신의 음악활동과 학교의 학업방식이 잘 맞지 않다고 판단, 첫 학기를 마치고 자퇴했다. 2000년 줄리어드 스쿨에 입학했고 입학생 중 수석의 자격으로 이작 펄만(Itzhak Perlman, 1945~ )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본래 크로스오버 연주에는 클래식 바이올린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전자 바이올린을 쥐어야 하지만 가렛은 스스로 모든 곡을 편곡해 클래식 바이올린으로도 다양한 곡의 연주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면서 클래식 바이올린인 스트라디바리우스도 그대로 사용 중이다. 그동안 정통 클래식으로는 특별한 성과가 없던 연주가들이 크로스오버로 눈을 돌렸던 것과는 달리 가렛은 어릴 때부터 화려한 실력으로 클래식계의 초엘리트 정통 코스만을 밟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로스오버로의 전향과 활동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크로스오버 후 록 음악과 접목시킨 그의 음반 또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의 천부적인 재능과 더불어 줄리어드에서 익힌 작곡 실력을 바탕으로 완성된 곡들은 발표하는 앨범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클래식과 크로스오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거머쥔 데이비드 가렛은 자신의 음악 활동을 통해 “젊은 세대들에게도 보다 가깝게 클래식을 전해 주겠다”라는 뜻을 밝혔다. 일반 대중을 크로스오버에서 시작해 전통 클래식의 세계까지 이끌고 싶다는 것이 그의 목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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