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AI가 내 직업을 다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며 벌벌 떨 때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런 AI를 활용해 나보다 업무 효율을 높일 인간 경쟁자들을 상대하는게 먼저다.

 “당신이 AI나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AI를 잘 사용하는 사람에게 이미 빼앗겼을 테니.” 최근 한 달간 그야말로 AI와 챗GPT에 대해서만 취재하고 인터뷰하고 공부하고 상상하며 접한 이야기 중 근미래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한 문장이다. 마치 챗GPT가 구글의 검색시장을 무너트리고 교육현장을 마비시키고 우리 직업도 빼앗아 갈 듯 호들갑이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일이다. AI보다 먼저 내 자리를 위협할 존재는 사람이다. AI라는 도구를 기본 옵션으로 장착한 사람 말이다. 계산기 누를 줄 아는 어린이가 10년 경력의 주산왕을 허무하게 만들었듯, 내비게이션을 다룰 줄 아는 초보 택시기사가 30년 빠꼼이 택시기사를 무력화 시켰듯이 나와 내 직업은 다시금 거대한 변곡점 앞에 서있다.

 

수년 내 위협받을 직업 
우리가 속된 말로 ‘노가다’라 지칭하는 일들이 있다. 먼 과거에는 주로 몸을 쓰는 일이었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이 보여줬던 산업혁명 이후의 인간의 삶은 이제는 공장 자동화라는 이름 아래 대부분 기계로 대체됐다. 현대판 ‘노가다’는 주로 컴퓨터와 씨름하는 일로 발현된다. ‘복사+붙여넣기’의 반복작업, 숫자입력, 받아쓰기, 포토샵에서 도트 수정하기, 영상 편집 등등 차고 넘친다. 기획하고 결정하는 시간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데 쓰인다. 팀장급 이상 리더가 아니라면 자신의 일과에서 이런 반복적인 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클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노가다’라고 하는 이런 업무는 AI가 대체하기 가장 쉬운 분야다. 리더나 전문가는 더 적은 시간을 들여 자신의 업무를 마칠 수 있게 되고, 이들을 도와주던 스태프 조직은 할당된 업무의 상당량을 AI가 대신 처리해주게 될 것이다. 즉, 같은 시간 리더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고 스태프 조직은 할 일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달리2(DALL-E 2)’의 등장을 본 사람들이 “앞으로 디자이너는 없어지겠구나”라고 걱정했지만, 디자이너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질 일은 없다. 감 좋고 트렌드 읽는 능력이 뛰어난 디자이너는 이제 한 땀 한 땀, 자기 손으로 클릭해가며 사진을 수정하거나 그리지 않아도 된다. AI에게 명령해 다량의 사진을 생성하게 만든 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 배경 등을 잘 고르고 잘 조합하기만 하면 된다. 지루하고 재미없는데 쓰는 시간은 줄어들고 창작하고 기획하는 일의 비중이 늘어나는 셈이다.
챗GPT에게 지난 30년 동안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해 없어진 직업들이 무엇이 있는지 물어봤다. 챗GPT는 △비디오 대여점 △여행사 상담사 △인쇄업체 △CS센터 직원 등을 첫째로 꼽았다. 스트리밍 영상은 비디오대여점을 파괴했고, 숙박 및 항공 앱은 여행사 상담사를 대체했다. 모니터와 태블릿은 인쇄업체를 필요 없게 만들었고, 자동화 시스템과 인터넷은 CS센터 직원 수를 확 줄여놨다. 대신에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라는 OTT 서비스가 탄생했고 마이리얼트립이나 부킹닷컴 같은 여행 플랫폼이 생겨났으며 아이패드 생태계는 수많은 서비스와 비즈니스를 만들어냈다.챗GPT는 이보다 더 광범위한 영역에 충격파를 가져다 줄 것 같다. 정보를 찾고 무언가 만들어내기 위해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것은 비단 특정 직업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의 업무 처리 속도를 비약적으로 올려줘 일 잘 하는 사람은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고 반복적이고 지루한 ‘보조’ 업무를 하던 사람은 AI에 대체되게 된다. 그야말로 업무 능력에서의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판단기준이 되는 업무능력에 있어 앞으로 ‘AI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가’는 주요 스킬 중 하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마치 현 시대의 외국어 능력이나 컴퓨터 활용 능력처럼 말이다.

 

LLM과 생성 모델
AI가 근미래에 미칠 영향을 너무 유난스럽거나 혹은 과소평가하지 않는 적정선에서 예측하려면 최근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준 LLM(Large Language Model, 거대언어모델)과 생성형 AI(Generative AI)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가 흔히 초거대 AI라고 부르는 LLM은 쉽게 말해 책을 아주 많이 읽어 똑똑해진 AI다. 2가지 면에서 거대한데, 첫째로는 읽은 텍스트의 양이 거대하다. ‘커먼크롤(commoncrawl)’이라고 하는 재단에서 크롤링한 인터넷 데이터, 미국 최대 커뮤니티인 ‘레딧’에 이용자들이 퍼 나른 링크를 기반으로 한 웹 텍스트, 인터넷에서 접근 가능한 책 1만1천여권, 위키피디아의 글 등 약 570GB의 글이다.

둘째로는 파라미터(매개변수) 수가 거대하다. 파라미터가 많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수많은 함수가 있고, 그 함수와 함수를 이어주는 노드가 많다는 뜻이다. 인간의 생각 프로세스로 치환해 설명해보면 조금 더 쉽다. 날씨를 예측한다 치자. 하늘을 보니 구름이 많다. 구름 양만 보고 내일 비가 올 것이라고 속단하면 초보다. 적벽에서 동남풍이 불것이라 예측했던 촉나라 제갈량이었다면 훨씬 더 많은 요소를 고려할 것이다. 구름의 높이, 모양, 바람의 방향, 속도, 현재 습도, 연중 우기의 분포, 심지어 땅에 있는 벌레들이나 하늘에 날아 다니는 새의 움직임까지 말이다. 파라미터가 많다는 이야기는 학습을 할 때나 판단할 때 이렇게 고려하는 요소들이 훨씬 더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날씨를 예측하려고 공부를 했는데 관찰력이 너무 좋아지다 보니 농사짓는 법까지 깨우치게 된 것이 초거대 AI다.
생성형 AI는 텍스트를 생성해 주는 챗GPT, 그림을 생성해 주는 달리와 같은 무언가를 창조해주는 AI로 알고 있지만 원래의 의미는 그게 아니다. 생성형 AI는 원래 LLM을 가능케하는 주요 기술을 일컫는 말이다. 과거 식별형(Discriminative) AI는 개와 고양이를 구별할 때 개의 특징, 고양이의 특징을 구별 짓는 그 중간선을 함수로 찾아내고자 했다. 생성형 AI는 고양이와 개의 특징에 따라 분포도를 그린 후 그 분포가 어떻게 모여 있는지 자체를 밝히고자 했다. 그 분포의 공식을 알아낸 후 분포 안에 들어갈만한 새로운 데이터를 직접 생성해본다고 해서 생성형 AI다. 고양이와 개를 구분하기 위해 고양이 그림, 개 그림을 직접 그려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공부를 할 때 100번 읽고 문제를 푸는 것보다 직접 작문 한 번 해보는게 더 도움된다고 하지 않나. 그렇게 도입된 생성형 AI는 이제 개와 고양이를 예전보다 더 정확히 구분해내는 것뿐만 아니라 시와 소설을 작문하고 그림을 그리게 됐고, ‘생성’이라는 단어가 마치 ‘창작’과 같은 의미로 확대해석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생성형 AI인 챗GPT에게 “네가 만약 로봇에 이식된 상태라면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보라“라고 시킨 뒤 나온 답을 그림을 생성해주는 AI인 스테이블 디퓨전에 입력해 나온 결과물.
생성형 AI인 챗GPT에게 “네가 만약 로봇에 이식된 상태라면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보라“라고 시킨 뒤 나온 답을 그림을 생성해주는 AI인 스테이블 디퓨전에 입력해 나온 결과물.

사기꾼과 도우미 그 사이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생성형 AI는 가장 그럴듯한 고양이의 모양, 가장 그럴듯한 강아지의 모양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창의성은 보통 가우시안 분포의 양극단에서 나온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가장 표준에 가까운 가장 안전한 데이터를 생성해낸다. 그들에겐 인간이 갖고 있는 직관적 맥락이 없기 때문에 자칫 강아지를 창의적으로 해석했다가는 머리 자체가 없는 강아지라든가 코를 킁킁대는 나무를 그려놓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몇몇 전문가는 생성형 AI에 두려움을 갖는 대중들에게 “챗 GPT나 생성형 AI는 사기꾼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말은 번드르르 하게 하지만 막상 알맹이는 없는 사기꾼들의 유려한 말솜씨와 비슷하다는 뜻이다. 챗GPT가 내놓은 답들도 찬찬히 뜯어보면 핵심을 파고들거나 100% 정확하지 않다. 매우 그럴듯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챗 GPT의 최대 강점이자 약점이다.

달리가 생성해낸 아보카도 암체어 출처 https://openai.com/blog/dall-e/
달리가 생성해낸 아보카도 암체어 출처 https://openai.com/blog/dall-e/

생성형 AI는 인간의 창의성과 만났을 때 ‘유용한 도구’로써 힘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달리가 생성해낸 아보카도 모양의 암체어 그림에서 영감을 받으면 현실에 없었던 독특한 모양의 가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역시 달리는 창의적이지 않느냐고? 노! 아보카도 모양의 암체어 그림을 그려달라고 입력어를 넣은 것도, 생성된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현실에서 구현해 내는 것도 인간의 몫이다. 벌써 해외에서는 생성형 AI를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 이를 연구하는 회사들이 수백 개 생겨났다. 일부 교육현장에서는 글쓰기 과제에 챗 GPT를 활용하면 ‘빵점’을 준다고 하는데, 일부 교수들은 다음 학기부터는 반드시 챗GPT를 활용해 글을 쓰는 과제를 내겠다고 한다. 내비게이션과 싸우려 했던 사람들과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더 빨리 가고자했던 사람들의 승부가 누구의 승리로 끝났는지를 생각해보면 생성형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될지에 대한 답도 벌써 내려져 있는 것 같다. 초거대 AI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한 전문가와 식사를 하며 들은 이야기가 있다. “개발하기 위해서 지금껏 쉬지 않고 공부해 왔는데, 지금은 공부하는 것 자체가 내 직업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든다”는 고백이었다. AI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국내에서 초거대 AI를 개발하고 있는 전문가도 모르고, 챗 GPT와 달리를 만든 전문가조차도 모른다. 분명한 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기술과 컴퓨터 성능, 데이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직은 AI가 내 직업을 다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며 벌벌 떨 때가 아니다. 그보다는 이런 AI를 활용해 나보다 업무 효율을 높일인간 경쟁자들을 상대하는게 먼저다. 그나저나 모바일 기기랑 애플리케이션 익히느라 고생한 게 고작 10년 전인데, 이번에는 AI다. 에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리더피아(Leaderpia)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