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별 리더십의 문제
진성 리더십과 리더십의 민주화

우리나라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리더십 체계를 보면 아직도 계층별로 다른 역량을 잡아 리더십을 교육시키는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요즈음의 L자형 저성장 기조, 구성주의, 초연결사회에서 요구되는 리더십과의 방향과는 거꾸로 가는 방향을 주장하고 있어서 우려가 크다.
리더십을 계층으로 나눠서 탑 다운으로 설계하는 것도 지속적으로 수평화되고 민주화되고 있는 변화의 방향과 맞지 않지만 더 큰 문제는 과거지향적 모형이라는 점이다. 계층별 리더십 역량모형이라는 것이 설계되는 원리를 보면 그 계층에서 상위권에 해당된 성과를 낸 사람과 하위권 성과를 낸 사람들이 보유한 공통역량에서 가장 차이가 많이 나는 차별역량을 리더십 역량으로 선정한다. 이 차별역량은 과거의 성과를 기반으로 선정된 것이다. 과거에 성공했다면 미래에도 성공할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미래의 역량이라는 것도 추적해 수정하기는 하지만 여기서 추적된 역량이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리더십 역량모형이라는 것의 의도는 차세대 리더들에게 조직에서 과거에 성공한 리더를 벤치마킹시키겠다는 것이다. 과거가 미래의 성공으로 그대로 연결될 것이라는 위험한 가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계층별 리더십이 더 잘 정착될수록 조직은 더욱더 극심한 리더십의 혼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현대는 리더들이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리더십 아포리아와 디아스포라를 동시에 경험한다는 점이다. 아포리아는 꽉 막혀서 답이 없는 세상을 말하고 디아스포라는 광활한 자유의 세상에서 방향을 잃고 헤맴을 이야기한다.
세기에 들이 닥친 L자 저성장 경기는 모든 조직의 리더들에게 더 이상 과거에 경험했던 그런 성장이 가능하지 않은 사방이 꽉 막힌 상황을 전개시키고 있다. 사방이 막힌 감옥을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지가 리더에게 부여된 절대 절명의 과제이다. 많은 리더들은 과거에 성공했던 방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고 믿고 시도하지만 이런 리더들이 돌파구를 마련하는 순간 갑질하는 리더라는 낙인이 찍혀 무너진다. 지금 우리 주변에 실제로 목격되는 현상이다. 또한 설사 성공했다고 느끼는 순간 더 큰 문제인 디아스포라의 문제에 봉착해서 몰락한다.
디아스포라의 세상은 사막 속에 놓인 상황과 비슷하다. 사막은 어제 완벽하게 지도를 업데이트 시켜 놓았다 하더라도 밤이 되면 모래바람이 불어와 지형을 바꾼다. 어제 만든 지도가 쓸모가 없어서 길을 잃게 되는 상황이다. 리더가 직면한 상황은 이런 지형이 매일 변화하는 변화가 상수화된 세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을 데리고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여행을 시켜야 하는 상황이 리더십의 디아스포라 상황이다. 사막의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자신만의 나침반을 갖고 있지 못하면 결국은 파국이다. 나침반으로 방향을 알 수 있을 때 자신이 서 있는 장소를 찍어낼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장소를 알 수 있을 때 비로소 새롭게 쓸 수 있는 지도를 그려낼 수 있다.
아포리아에서 성공적으로 탈출한 사람들 대부분은 나침반을 갖고 있지 못하다. 계층별 리더십에서는 역량을 통해 상대와의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쳤지 방향을 잃었을 때 어떻게 방향을 찾아서 지도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의 리더들이 처한 상황은 트루먼 쇼의 트루먼 버뱅크의 상황과 비슷하다. 물에 대한 갖은 공포를 극복하고 삶의 아포리아였던 연극 무대를 탈출해 간신히 문 밖으로 나서자 자유롭지만 방향을 알 수 없는 디아스포라의 세상에 던져진 것이다.
트루먼 버뱅크는 자신만의 나침반을 갖고 있었기에 자신의 지도를 그려내 삶의 목적지까지 여행을 완수했을 것이라고 믿지만 지금까지의 계층별 리더십 교육을 답으로 알고 회사에서 그려준 지도를 답으로 알고 살아온 사람들은 나침반을 준비해오지 못했을 개연성이 농후하다. 사람들은 회사가 만들어준 과거의 지도는 갖고 있지만 길을 잃었을 때 필요한 나침반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길을 잃는 순간 그냥 디아스포라의 사막 속에서 헤매다 기진맥진해서 쓰러지는 삶의 운명이다. 아니면 과거의 지도를 지도라고 믿고 길을 가다가 결국은 길을 잃고 무너진다.
계층별 리더십 교육을 리더십 교육의 모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회사들은 자신 회사의 리더들을 끊임없이 아포리아와 디아스포라의 세상 속에서 헤매도록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리더십의 새로운 정체성
초연결 디지털 시대 리더십의 표준으로 언급되고 있는 진성 리더십(authentic leadership)은 이런 아포리아와 디아스포라의 세상에서 리더들이 리더십의 본질을 되찾아 미래를 만드는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진성 리더십은 미래를 선도하는 리더들의 새로운 리더십 문법이자 리더십의 새로운 문화운동이다. 리더십의 목적은 이끄는 것이 아니라 아포리아 디아스포라를 극복해갈 수 있는 조직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문화를 통해 미래를 만드는 작업이다.
관리자가 주어진 자원을 최적화 하도록 배분하는 의사결정을 내려 목표를 초과달성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리더는 자원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에서 유라는 근원적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따라서 리더들에게는 리더십은 근원적 변화를 달성하는 수단이다. 소통도 잘하고 의사결정도 잘하고 부하들 동기화 능력이 뛰어나서 리더십 점수에서는 A 플러스 점수를 맞았다 하더라도 이 리더십을 수단으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리더로서는 낙제점이다.
리더십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신자유주의가 풍미하던 답이 정해진 시절에는 답을 정해놓고 리더가 자신의 스타일을 살려 구성원들을 일사분란하게 뛰도록 만들면 답을 달성하는 성과를 내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시절에는 리더가 사용하는 특정한 스타일이 중요했다. 히딩크가 유명해지면 히딩크 스타일의 리더십이 답으로 규정됐고, 야구의 김성근 감독이 우승하면 김성근의 리더십이 답으로 규정돼 모든 회사들이 벤치마킹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답이 정해져 있지 않는 세상에서 답을 만들어 변화를 선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렇게 정해진 스타일은 변화를 이끄는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 특정한 리더십 스타일에 대한 회의는 사람들에게 차라리 리더십이 필요 없는 세상을 갈구하게 한다.
실제로 리더십에 대한 답이 정해지지 않은 세상에서 세상의 변화를 이끈 리더들은 리더의 존재를 구성원이 못 느낄 정도로 리더십을 행사한다. 구성원들이 리더의 리더 스타일을 못 느끼지만 어떤 연유인지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해서 근원적 변화를 달성하는 리더십의 국면이 리더십을 가르치는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세상이고 리더십의 마지막 종착역이다.
리더의 존재가 구성원들에게 인위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들에게 리더가 필요 없다고 느껴지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고 진성 리더십은 여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노자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리더십
리더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는 모든 리더십 교재에서 인용하고 있는 노자의 도덕경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노자의 도덕경 17장을 보면 다음 구절이 나온다.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공성사수, 백성개위아자연)
[리더가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해서]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면 백성들은 말할 것입니다. 이 모두가 우리 스스로가 이룬 된 것이다.’
리더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고도 리더가 의도했던 변화의 상태를 구성원들이 성취하게 하는 상태가 ‘무위자연(無爲自然) 리더십’이다. 리더십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에 배태되어 변화를 일으킨 상태이다.
요순시대는 노자가 꿈꿨던 무위자연의 리더십이 실현된 시대이다. 태평성대를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동양에서는 요순시대를 태평성대로 생각한다. 요임금과 순임금을 성인으로 부른 이유는 백성들이 실제로 부른 격양가 때문이다. 격양가는 백성들이 ‘땅을 치며 부르는 노래’로 요순시대 백성들은 다음과 같은 격양가를 불렀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을 갈아 먹으니,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요순임금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무위에 따라 자연스럽게 순리에 따른 정치를 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제왕의 힘이 작용하는지조차 몰랐다는 의미다. 노자가 주장한 무위지치(無爲之治)의 이상향 혹은 무위자연의 리더십이 실현된 모습이다. ‘무위자연 리더십’은 리더가 이런 운동장을 만들어주고 이 운동장에 대한 공로는 백성들이나 구성원들이 가져가게 만드는 리더십이다. 이런 노자의 무위자연 리더십과 정반대 리더십은 공은 자신이 다 가져가고 과는 부하들에게 돌리는 리더들이다.

진성 리더십과 리더십의 민주화
리더십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진성 리더십에서는 노자의 무위자연의 리더십 상태를 리더십의 민주화라고 칭한다. 리더십의 민주화란 리더십 스타일과 리더의 정체성에 대한 답을 회사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리더 스스로 일인칭으로 만들어 나가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리더십에 대한 스타일과 새 정체성을 만들 권리를 회사가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십의 장본인인 리더들에게 넘겨줘 리더가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주인의식을 느끼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회사에서는 특정한 스타일의 리더를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의 숫자만큼의 리더십을 육성한다.
진성 리더십은 리더에 대한 스토리와 스타일을 회사에서 일률적으로 만들어서 강요하는 삼인칭 모형이 아니라 자신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해 일인칭으로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권한을 리더십의 실무자인 리더에게 돌려준다. 진성 리더십은 리더십의 민주화를 통해 리더뿐 아니라 모든 실무자가 리더로 태어나는 세상을 염두에 둔다.
이와 같은 세상을 위해 조직의 최고 리더는 구성원들을 자신의 일인칭 리더십을 디자인 하도록 코칭해주고 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자신의 리더십 기량을 실현시킬 수 있는 목적과 사명의 운동장을 제공해주는 사람이다. 리더십의 민주화를 통해 구성원들이 리더십을 완성해 조직에 변화를 만들어내면 우리가 해냈다고 외치게 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주는 리더들이 최고 수준의 진성 리더들이다.
진성 리더는 이런 리더십이 가장 성숙한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게 위해 지금 3인칭 리더십에 대한 패러다임을 어떻게 혁신시키고 이에 도달하기 위한 징검다리와 운동장을 어떻게 만들고 구성원들이 자신의 리더십을 일인칭으로 만들어 리더로 태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진성 리더가 꿈꾸는 리더십 세상이 우리가 지금 공식적 리더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존재가 물처럼 자연스러워 구성원 리더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무위자연의 리더십 상태이다.
진성 리더들도 리더십이 필요 없는 세상이 불가능하다고 믿지만 그럼에도 리더의 존재가 물처럼 자연스럽게 조직에 스며들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영향력이 행사되는 상태를 최고의 리더십 상태로 규정한다. 진성 리더가 소망하는 리더십의 세상은 리더의 존재가 구성원의 존재보다 인위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리더십이 아주 자연스런 세상이다.
